[분석과 전망] 근본적 합의 불가능한 美·中 무역협상

"정상 간 담판 앞둔 미·중 협상
타결되든 결렬되든 큰 차이 없어
'중국 경제 구조적 변화' 어려워"

허윤 <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
지난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미·중 무역협상이 떠올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상기된 얼굴 뒤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불안한 모습이 실루엣처럼 어른거렸다. 김 위원장이 체제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듯이 ‘2049년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이루기 위해 시 주석은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산업정책을 폐기할 수 없다. 따라서 ‘비핵화의 완전한 실현’을 염두에 둔 미·북 핵협상이나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목표로 한 미·중 협상은 처음부터 타결이 불가능한 협상이 아닐까?

“중국을 자유무역 체제에 편입시키면 선한 파트너로 변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2017년 말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2012년 이후 시 주석이 사상과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더욱 노골화하자 미국의 중국 견제는 초당적 국가 아젠다로 자리잡았다.중국 국유기업은 국유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화웨이 같은 민간기업도 국가개발은행(CDB)의 특혜 대출로 성장해 왔다. 물론 지금의 선진국도 산업정책으로 성장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한해 예외로 인정되는 보조금을 경제대국이 이처럼 전략적으로 살포한 경우는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초 3월 1일까지 무역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2일부터 부과할 예정이던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시 주석과의 무역담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까? 아니면 협상타결을 선언할까? 중국 정부가 협상의 핵심 의제인 ‘산업정책의 전면적 수정’을 거부한 것이 전자의 이유가 될 것이고, 후자는 그나마 얻어낸 중국의 양보가 정치적 전리품이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차이가 없다. 협상의 결렬로 다시 불붙을 미·중 관세전쟁은 도발과 보복, 협상이라는 패턴을 반복할 것이다. 협상이 타결돼도 평화는 오래갈 수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미국 무역수지가 거시경제변수에 의해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둘째는 중국의 기술이전 강요나 지식재산권 절취 및 사이버 해킹 등은 더욱 교묘하게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매출액은 4630억달러였다. 이는 미국의 대중(對中) 상품 수출액의 3.5배가 넘고, 미국에 투자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시장 매출액 450억달러의 10배가 넘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 대표는 최근 “협상이 타결된다면 이행 점검을 위해 양국은 매달 실무급 회의, 분기별 차관회의, 반기별 장관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며 “중국 내 미국 기업의 각종 불만은 익명으로 받을 것이며 장관회의로도 해결이 힘들면 미 정부가 상응하는 조치를 중국에 일방적으로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동안 미·중 전략회의를 수없이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는 데 있다. 또 중국에서 사업하는 외국 기업이 중국 정부에 맞서기엔 ‘미움 받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은 중국을 타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개혁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차이나 리스크를 줄여 우리 기업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중국 눈치나 보면서 무임승차를 기대하기보다는 동맹국 주도의 WTO 개혁에 우리도 적극 동참할 때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다자주의를 선도할 11개국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의 득실을 엄밀히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의 CPTPP 가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한국에 이어 CPTPP에 가입한다면 미국의 참여는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