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의(定義)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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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새 정부가 발벗고 나섰다.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는 귀에 정신장애 수신기를 꽂고 다니게 했다. 약 20초마다 날카로운 잡음을 쏘아 뇌에 충격을 줬다. 잘생긴 사람에게는 가면을 쓰게 하고, 춤을 잘 추는 댄서에겐 다리에 무거운 추를 달게 했다.’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SF단편 ‘해리슨 버거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런 사회는 획일적인 하향 평준화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은 간데없고, 모두들 C학점의 평균점을 받는 ‘결과의 평등’에 묶이고 만다. 평등(equality)이라는 개념을 기계적으로만 해석한 탓이다.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언어는 소통과 행동의 매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정의(定義·definition)다. 잘못된 정의는 비뚤어진 신념을 낳는다. 비뚤어진 신념은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한다. 때로는 사회 갈등과 국가 간 대결까지 부른다.
미국과 북한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도 용어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정의부터 그랬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가 곧 비핵화’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비핵화의 일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영변 핵 시설의 범위에 대한 정의도 달랐다. 북한은 영변 전부를 내놨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일부만 내놓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은 여의도 두 배 면적의 영변 단지 가운데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원자로와 재처리 공장만 영변 핵 시설이라고 우겼다. 그러나 미국은 우라늄 농축 시설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변엔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 등 핵물질 생산·보관·처리와 관련된 390개 이상의 건물이 밀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근본적으로는 비핵화의 개념부터 차이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로 맞서고 있다. ‘종전선언’도 전쟁 종결 의지를 선언하는 것부터 군사적 배치와 주둔의 정당성을 포함하는 것까지 의미가 다양하다. ‘평화협정’ 역시 평화 정착에 대한 항구적이고 기본적인 방향 설정이라는 뜻과 군비 축소 및 주한미군 철수 개념을 아우르는 뜻으로 서로가 달리 해석하곤 한다.
용어 해석 간의 간극을 좁히고 불확실성을 줄이지 않으면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은 멀어질 것이다. 용어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만큼 중요하다. 정의(定義)가 바로 서지 않으면 정의(正義)도 바로 세우기 어렵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가 전쟁을 주관하는 부서를 평화부(平和部)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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