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 "증권사 존재 이유는 고객이 수익 내도록 돕는 것"

CEO 탐구

'임무달성' 직원에 파격 보상…5년만에 최대 순익
작년 순이익 48% 늘어 1047억 달성
"M&A 등 통해 기업가치 키울 것"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서명석 유안타증권 사장은 5년여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동양증권(유안타증권의 전신)을 통해 회사채 등을 판매한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던 2013년 11월 7일 새벽, 분노한 투자자들이 부산 범천동의 동양증권 부산본부를 점거했다. 음식과 맥주를 배달시켜 먹는 그들 앞에 임직원들은 죄인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해 고객이 대거 이탈하면서 동양증권은 387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5년이 지난 지금,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48.1% 증가한 1047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 유안타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단 후 최대 실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익이 포함되는 리테일 부문은 전년 대비 190% 늘었다.서 사장은 이런 성과에 대해 “직원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의 답이 의례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회사 위기를 함께 극복한 직원들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동양 사태 이후 영업기반이 무너졌어요. 기존 고객들은 떠나고, 새 고객은 찾기 어렵고. 하지만 직원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뛰어준 덕에 회사가 살아났습니다.”

“증권업은 사람과 PC가 전부다”

서 사장은 33년 증권맨 경력을 한 직장에서 쌓았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1986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동양증권 공채 2기로 입사해 지점 프라이빗뱅커(PB)와 리서치센터장, 경영기획본부장 등을 거쳤다. 2013년 부사장에 취임했고, 2014년 동양증권이 대만 유안타그룹에 인수된 후 대만 본사에서 온 황웨이청 사장과 현재까지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6년간 동양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맡으며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습관은 경영 철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직원들의 열정을 끌어내는 데도 숫자로 드러난 성과에 대해 명확한 보상을 지급한 것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유안타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량평가를 중요시하는 대신 보상은 최대한 업계 평균보다 높게 책정한다는 설명이다. 서 사장은 “증권사의 존재 이유는 고객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만족스러운 보상이 받쳐 줘야 직원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지 않고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 사장이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은 직원들과의 소통이다. ‘증권업은 사람과 PC가 전부’라는 신념이 바탕이 됐다. 그는 부사장 시절부터 2~3년에 한 번씩 직원들을 1 대 1로 만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거나 사내에 신규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직원과 마주 앉아 15분 내외의 면담을 하는데, 면담 전 미리 설문지를 돌린다. 직원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인사기록에 없는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본인이 지점장이거나 사장이라면 어떤 전략을 도입할지, 최근 인상적이었던 경험이 있는지 등을 자유롭게 쓰게 한다. 설문을 읽고 면담 때 궁금한 것들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를 나누면 직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유안타증권의 주식매매 시스템 ‘티레이더’도 그렇게 탄생했다. 티레이더는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해 투자자에게 주식 매수 및 매도 시점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영업 직원이 서 사장과의 면담에서 ‘투자자들에게 주식 매도 시점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됐다.올 들어서도 면담을 진행 중이다. 본사와 전국 66개 지점에서 다양한 직급의 직원 200여 명과 마주 앉을 예정이다. 전체 직원(1729명)의 약 8분의 1을 만나는 셈이다. 최근 면담에 참여했던 한 직원은 “사장이기에 앞서 공채 2기인 대선배이다 보니 후배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늘 궁금해하는 것 같다”며 “직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뭔지도 얘기하는 등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안타’ 간판 5년…실적 쑥쑥

올 들어 중국 성장 둔화 등으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외 증시가 박스권에 머물며 브로커리지 수익이 부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증권사들의 실적에도 ‘경고등’이 커졌다.그러나 리서치센터장 시절부터 대표적인 낙관론자로 꼽혔던 서 사장은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한다. 그는 올해 증권업황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초 국내외 경기지표가 부진해 시장의 우려가 커졌지만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는 조짐도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월 내놓은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3.6%로, 2012~2018년 평균인 3.5%보다 높습니다. 미·중 무역분쟁,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 등 우려 요인은 이미 증시에 반영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해소되면서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증권사들의 위탁매매 수익도 개선될 겁니다.”

유안타증권의 올해 순이익 목표는 약 1100억원이다. 연간 최대 실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리테일과 투자은행(IB), 세일즈앤드트레이딩(S&T) 등 모든 사업부문의 역량을 키우고 부문 간의 연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IB와 S&T본부 등에 인력을 새로 충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부터 증권업계에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게 서 사장의 생각이다.

올해부터는 대만 본사인 유안타금융지주와의 관계도 달라진다. 지난 5년간 서 사장과 호흡을 맞춰온 황웨이청 사장이 임기를 1년 남기고 대만 본사로 복귀한다. 후임은 궈밍쩡 유안타금융지주 기업금융담당 전무가 유력하다. 서 사장은 “궈밍쩡 전무와도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라 협업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서 사장은 올해부터 한국 유안타증권이 유안타그룹의 ‘키 플레이어’(핵심 선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안타그룹은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서 사장은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자본을 늘리고 회사 가치를 키우겠다”며 “지금까지 ‘구 동양증권’으로 인식돼온 측면이 컸다면, 올해부터는 ‘유안타증권’으로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명석 사장 프로필△1961년 서울 출생
△1980년 충암고 졸업
△1987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1986년 동양증권 입사
△1999년 동양증권 투자전략팀장
△2006년 동양증권 리서치센터장
△2011년 동양증권 경영기획부문장
△2011년 동양파워 발전사업추진본부장
△2013년 동양증권 부사장
△2013년 동양증권 대표
△2014년 유안타증권 공동대표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