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버닝썬 의혹'에도 수사권 달라는 경찰

조아란 지식사회부 기자 archo@hankyung.com
빅뱅의 멤버 승리가 성접대를 한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원본 파일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5일 오후 일부 입수했다. 승리가 2015년 12월 외국인 투자자들의 접대를 위해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 자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성접대를 하려 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 등이 담긴 파일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카톡 원본 파일 등 증거물 일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수사권도 없는 권익위가 이 파일을 먼저 입수한 것은 지난달 22일 제보자가 증거물을 ‘공익신고’ 형태로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제보자는 카톡 메시지에 승리 측과 경찰의 유착이 의심 가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증거물을 경찰이 아니라 권익위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권익위로부터 모든 자료를 받지도 못했다. 광수대 관계자는 “권익위에 접수된 자료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이 수사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됐는데도 이번 일만큼은 “제보자가 똑똑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경찰이 증거를 인멸해버릴 수도 있는데 뭘 믿고 경찰에 원본 자료를 제공하냐”는 것이다. 경찰은 이번 일로 비웃음도 샀다. 지난 4일 원본 파일이 권익위 서울사무소에서 세종시로 발송됐단 말을 듣고 경찰 관계자가 세종시 권익위에 방문했다가 ‘우편 배송 중’이란 것만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린 것까지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공무원들은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요구하는 대국민 서명운동에 나섰다. 경찰청 내 일반 행정공무원으로 이뤄진 경찰청공무원노동조합은 오는 12일까지 전국 9곳에서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경찰은 그동안 검·경수사권 조정을 요구해왔다.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하면서 권력이 비대해졌고, 부패해졌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에는 지금의 경찰이야말로 부패한 권력기관과 다름없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제보자에게 국민이 박수를 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도 없이,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경찰의 서명운동이 얼마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