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억만장자들의 첫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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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어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부자 순위에서도 그는 자산 1310억달러(약 148조원)로 2년 연속 1위를 지켰다. 2위를 차지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3위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각각 소프트웨어 세일즈와 식료품 판매로 부(富)의 씨앗을 키웠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중에는 이처럼 영업맨으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사회학자 라이너 지텔만은 45명의 억만장자를 인터뷰한 책 《웰스 엘리트(The Wealth Elite)》에서 “이들이 부자가 되기 전 가장 많이 거친 일이 영업직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들 중 70%가 “세일즈 재능이 성공의 가장 큰 요소였다”고 답했다.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인 링크트인의 조사에서도 영업직은 성공한 기업인들의 ‘전(前) 직업 순위’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들이 판매한 물건은 무엇이었을까. “사실상 모든 것”이다. 값싼 인조보석과 화장품, 중고차, 라디오 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러 다녔다. “소음 차단재로 쓰면 좋다”며 낡은 달걀상자까지 판매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최강자인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한때 청소기 방문판매원이었다.
영국의 세일즈 취업 사이트인 아론 월리스에 따르면 100대 억만장자 중 53명은 가업이 아닌 일반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이 중 10명에 두 명은 세일즈맨으로 출발했다. 세일즈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성공 비결은 ‘거래의 기술’을 익히고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업 초기부터 작은 거래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 경험을 1000만, 억 단위의 거래 성사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부자학 연구가들은 “이젠 자신의 가치를 평생 세일즈해야 하는 시대”라며 “흔치 않은 상품을 판매하는 등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부의 추월차선’에 올라타는 연습을 하라”고 권한다.
억만장자들의 어릴 적 아르바이트 중 신문팔이가 첫째였다는 포브스의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6세 때 껌과 콜라를 팔았던 워런 버핏을 비롯해 잭 웰치, 월트 디즈니 등이 모두 신문배달 소년이었다. 이들은 신문이라는 ‘현재 정보’를 팔면서 ‘미래 비즈니스’를 준비했다.
영국 작가 토머스 풀러가 “오늘 달걀 한 개를 갖는 것보다 내일 암탉을 한 마리 갖는 편이 낫다”고 말한 부의 근본 원리를 어릴 때부터 체득한 셈이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