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회사법 목적은 기업가치의 극대화"

프랭크 이스터브룩·다니엘 피셀 《회사법의 경제학적 구조》
기업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하는 ‘규제주의 회사관(觀)’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 경영자가 전횡하면서 소액주주나 고객을 착취한다는 생각에서다. 회사법을 통해 임금·생산·가격을 제한하고 의결권도 규제해야 한다는 이런 부류의 주장은 회사와 회사법에 관한 논의가 일천했던 1970년대까지 대세를 이뤘다.

1980년대 들어 회사 본질에 대한 탐색이 본격화되면서 규제주의적 회사관은 급속 퇴조했다. 경영자 전횡은 채권자와 주주들이 ‘계약’으로, 더 중요하게는 다수 투자자로 구성된 시장 압력만으로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회사법에 의한 규제는 시장과 가격 메커니즘 작동을 방해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온 덕분이다. 프랭크 이스터브룩 미국 연방법원 판사(사진 왼쪽)와 법학교수 다니엘 피셀(오른쪽)이 함께 쓴 《회사법의 경제학적 구조》는 회사와 회사법에 대한 인식 전환을 불러오고, 확산시킨 핵심 저작이다."개입 강조하는 회사觀은 방향착오"

회사의 사전적 의미는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되는 법인’이다. 회사법은 형식적으로 상법 ‘제3편 회사’ 조문들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 관련 법규 일반을 통칭하는 말이다. 《회사법의 경제학적 구조》에서 내리는 정의는 좀 다르다. 저자들은 법경제학자답게 회사를 ‘주주와 경영자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집합체’로 규정한다. 자연히 회사법도 ‘표준적인 계약조항의 모음’으로 정의된다. 합리적 계약당사자들이 완전한 정보를 갖고 있고, 계약 체결에 비용이 들지 않을 경우에 선택했을 조항들을 제시한 것이 회사법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회사법의 목적을 ‘회사 가치의 극대화’로 봤다. 좋은 회사법이 작동하면 사회적 거래비용이 최소화되고 기업 가치가 사회 전체적으로 극대화된다는 설명이다. 회사법을 해석하는 법관 역시 경영자와 주주 사이에 체결된 표준적 계약을 보충하고, 회사 가치 극대화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모두의 부(富)를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이며 공정을 앞세우는 것이나 가부장적 간섭은 회사법의 지향이 될 수 없다.”경영자가 회사를 지배하고 있으며 투자자는 무기력한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규제주의적 회사관’은 방향 착오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주주나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영자들의 행동을 막아내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시장과 주주들이 원하는 지배구조, 투자, 배당에 실패시 주가 하락을 포함한 여러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많은 급여와 직책에 딸린 특권 상실에 대한 위기감에 주주와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최적 조치에 소홀한 경영자도 있겠지만 그런 기업은 시장 경쟁 과정에서 도태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경영자의 위법·부당 행위를 방지하려면 금융회사의 독립성 보장과 효율적 자본시장 구축이 중요하다는 논지로 이어진다.

회사법의 대표적 특징인 ‘유한책임의 원칙’도 회사 가치 극대화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개념이라고 진단했다.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 다른 주주들이 재산을 은닉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등의 업무에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른 주주의 재산이 적을수록 회사 채권자들이 유사시 자신의 재산에 권리를 설정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라고 설명했다.또 외부효과가 없을 경우 기업의 이윤은 사회 후생과 일치한다고 봤다. 회사 계약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과 주주에게 최적인 것은 사회 전체 관점에서도 최적이라고 분석했다.

주주에 좋은 것이 사회적으로도 최적

회사법은 적용이 강제되는 강행규정이라기보다 기업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임의법규여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회사법의 기본 목적이 ‘표준계약서 제공’인 데다 입법자나 관료보다 경영자가 정보와 전문지식에서 우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경영자와 투자자가 원하는 대로, 감독기관의 통제 없이 회사 지배구조를 구성하도록 사적 자치가 허용돼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부정한 동기 없이 성실하게 행동하는 한 오류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 존중의 원칙’을 법원이 견지하는 것도 회사법의 임의법규성에 대한 동의에서 비롯된다고 적었다. 따라서 “회사에 대한 규율과 강제가 필요한 경우에도 강성 규제인 법률 대신, 처벌조항이 약한 연성 규제인 가이드라인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문했다.미국은 50개 주가 각기 다른 회사법을 운용하는 방식으로 임의법규성을 확보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유수 기업 상당수가 자유방임으로 유명한 델라웨어주에 본사를 두는 식으로 회사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단일 경제권’인 한국이 선진 회사법 체계 구축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규제와 개입 위주의 회사법 체계로는 자본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지켜내기 힘들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