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에 한 채…" 광양에 갭투자자 몰린다

주간상승률 전국 1위

수도권 등 외지인 비율 61%
전세와 '갭' 최대 2000만원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은 전남 광양시 일대에 전국의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광양시 중동의 ‘성호2차’ 아파트. /네이버거리뷰 캡처
“한 채만 사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는 남도 끝자락의 전남 광양시가 갭(gap) 투자자들의 성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주변에 새 아파트 공급이 거의 없는 탓에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하고 있어서다. 광양시 중동의 A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세를 끼고 500만원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며 “요즘 발 빠른 수도권 투자자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했다.‘인구 15만’ 광양, 집값 상승률 1위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광양 아파트 매매가격은 이달 4일 기준 주간 단위 조사에서 한 주 만에 0.29% 상승했다. 전국 최고의 상승률이다. 올해 누적 상승률은 1.57%에 이른다. 역시 상승률이 가파른 대구 서구(0.99%)를 훨씬 앞지른 수치다. 인구 15만 명 규모 소도시가 전국 집값 상승률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광양의 상승세는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불이 붙었다.전세가격도 꾸준히 오르는 중이다. 올 들어서만 0.46% 상승했다. 20년차 안팎 아파트 단지의 경우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다. 중동 ‘성호2차’ 전용면적 59㎡는 이달 6800만원에 매매 거래됐는데 전세는 6500만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세를 안고 300만원이면 한 채를 살 수 있는 셈이다. A공인 관계자는 “수리를 바로 마친 물건이라도 매매와 전세의 갭을 1500만원 안쪽에서 맞출 수 있다”며 “5000만~1억원을 들고 와서 5~10가구씩 사는 투자자도 제법 있다”고 귀띔했다.

투자금 2000만원만 있으면 못 사는 아파트가 드물 정도다. 광양시청 바로 앞 ‘태영2차’ 전용 59㎡는 전세를 끼고 1000만원이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매매가격은 1억~1억500만원 안팎인데 전세가격은 9000만원 후반대다. 맞은편 ‘금광1차’ 같은 면적의 아파트는 한 채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이 1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인근 마동 ‘금광 블루빌’ 전용 74㎡는 올해 초 1억4000만~1억4800만원에 거래됐는데 전세가격은 1억3500만원 안팎이다.

신축 아파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로 입주 6년차인 중동 ‘대광로 제비앙2차’ 전용 74㎡는 매매와 전세가격 차이가 3000만원가량에 불과하다. 이 면적대는 지난달 1억9000만원에 손바뀜했다. 1년 전만 해도 1억4000만원 안팎에 거래되던 아파트다.“갭 투자자 몰려”…외지인 거래 60%

외지인 거래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광양 아파트 매매 거래 가운데 외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말 20~30% 중반대에서 올해 1월 61%(437건)로 급증했다. 한 아파트는 올 들어서만 지난달까지 143건이나 거래됐다. 같은 기간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전체 거래량(178건)과 비슷한 수준이다.일선 중개업소들은 투자 수요로 집값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고 전한다. 마동 B공인 관계자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다 보니 서울 등 수도권 투자자들이 내려와 쓸어 담는 수준”이라며 “발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재작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거래량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몰리는 건 공급 부족 탓이다. 광양은 지난해 새 아파트 입주가 420가구에 불과했다. 내후년까지 예정된 입주물량도 아예 없다. 중동 C공인 관계자는 “올해 여수 웅천지구 입주가 몰리고 내년엔 순천에 새 아파트 입주가 있지만 가격 편차가 커 완전히 다른 시장”이라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전형적인 상승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제철소 등 주변 산업단지 종사자들의 소비력이 높은 것도 임대 수요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여수 산단 근무자들도 집값이 싼 광양에서 전셋집을 찾는다”며 “지방 발령을 받아 가족 단위로 집을 구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집값 상승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묻지마 투자’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매매가격이 저렴한 집은 상태가 좋지 않아 전세가 잘 나가지 않거나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여러 채를 소유할 경우 전세가격이 조금만 출렁여도 연쇄적인 영향이 있는 만큼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