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열정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달콤한 속임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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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배신“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열정이 이끄는 길을 가라.”
칼 뉴포트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72쪽│1만5000원
진로에 대한 고민에 쉽게 하는 답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얘기 같지만 과연 재미를 알고 열정을 따르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 박사 과정을 마친 칼 뉴포트는 2010년 생애 첫 취직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 여파는 컸고 교수직을 둘러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교수를 유일한 인생의 경로라고 생각해온 그에게 지도교수는 “얼마나 낮은 수준의 학교까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 앞에 의문이 생겼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는 벤처투자자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머, 작가와 코미디언, 과학자와 교수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많은 이가 기계적으로 얘기하는 ‘열정’이 답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조지타운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열정의 배신》을 통해 열정은 속임수고 오히려 위험하다고 역설한다.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한다. 모두가 자기 안에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고, 누구나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밸러랜드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던 대학생들의 84%가 열정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열정을 쏟는 활동은 댄스, 하키, 스키, 독서, 수영에 집중됐다. 소중한 열정이지만 주로 취미의 영역이었다. 직업 및 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 항목은 전체의 4%에 불과했다.
잘 하고 오래 하면 일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도 ‘열정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든다.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 예일대 조직행동학 교수는 대학 행정 보조 직원들을 조사해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근무연수’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일을 오래 하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가 내린 결론은 열정은 ‘제대로 일하면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을 게 아니라 제대로 일하는 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무작정 열정을 따르는 것을 대신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훌륭한 직업은 희소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뛰어난 인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커리어 자산’이라고 칭하는 능력을 쌓는 핵심 전략은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두는 ‘장인 마인드셋’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가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일을 잘하는 데 투자하고 집중하라는 조언이다.두 번째는 저자가 ‘꿈의 직업을 만드는 묘약’이라고 칭한 자율성, 세 번째는 일관된 목표를 갖고 집중하게 해주는 사명감이다. 아이비리그를 나와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라이언 보일랜드, 젊은 과학자들이 빠져 있는 냉소주의를 이겨낸 하버드대 진화생물학 교수인 파디스 사베트 등의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본다. 책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파고든다. 작지만 구체적인 실험을 통해 피드백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고 스스로를 마케팅하고 주목받을 수 있는 길도 제시한다.
출판사는 《So Good They Can’t Ignore You》(그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을 갖춰라)라는 원제를 눈길을 끌 수 있게 바꿔 달았다. 제목을 보고 혹했다가 실력, 자율성, 사명감 등을 언급한 목차를 보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당연해서 진부한 얘기로 들릴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열정을 따를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에 열정이 따라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은 신선하고 솔깃하다.
지난해 말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으로 유튜버가 처음 등장해 화제가 됐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취미와 일은 다르다. 맞는 일을 찾는 것보다 제대로 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책은 거듭 강조한다. 취향을 찾기 전에 일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