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 vs 한국당…선거제 개혁법 '패스트트랙 혈투'

'최후통첩' 보낸 여야 4당
강력 반발하는 한국당
쟁점법안 연계 처리 나선 與
7일 올 들어 첫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가 본회의장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3월 임시국회가 개의와 동시에 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의 늪에 빠졌다. 여야 4당은 오는 15일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입법부 쿠데타’라며 강력 반발할 태세다. 국회의원의 이해가 걸린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어 실제 지정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여야 4당이 선거법과 연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과 공정거래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면 2개월 만에 정상화된 국회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벼랑 끝에 몰린 선거제 개혁 논의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한국당에 10일까지 선거제 개혁과 관련한 의견을 내놓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정의당 소속인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6일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당론도 없고 이후 책임 있는 계획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선거제도 개혁이 표류하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당에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7일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공수처 설치안, 그리고 가장 시급한 민생개혁입법 등 개혁 3법으로 축소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자는 데 (여야 4당이) 의견을 모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정의당이 내년 총선을 겨냥해 줄기차기 주장하고 있는 ‘선거제 개혁’은 전국 득표에 따라 비례대표를 할당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핵심 내용이다. 의석수 증가에 반대 여론이 높아 현재 47석인 비례대표를 민주당은 75석, 야 3당은 100석으로 늘리는 안을 놓고 조율 중이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확대로 인한 의석수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국정과제를 뒷받침하는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의 선거제 개편안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선거제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동시 논의’를 고집하고 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 4당의 협공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제1 야당을 패싱하면서 선거제도를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사상 초유의 입법부 쿠데타”라며 “의석수를 한 석이라도 늘리는 법개정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맹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이념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자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15일을 패스트트랙 도입의 ‘데드라인’으로 정한 이유는 내년 총선에 앞서 법 개정이 가능한 시점을 내년 2월 임시국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15일까지 지정해야 주요 선거사무가 결정되는 선거일 60일 전인 내년 2월 15일까지 선거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계산에서다.여야 4당 ‘패스트트랙’ 진짜 실행할까

민주당은 현재 43명인 비례대표를 군소 야당의 요구대로 75명까지 늘리면 지역구 축소가 불가피해 손해다. 수도권과 호남, 충청, 경남 일부 등에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 많기 때문에 1개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에서 한국당과 비슷한 처지다.

하지만 민주당은 숙원 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검찰 개혁의 일환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제 폐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 등이 한국당 반대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선거법 개정을 달성해야 하는 군소 야 3당의 생존 본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무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김종석 의원은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려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악법”이라며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에 동의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하지만 여타 상임위에서 전방위적으로 패스트트랙이 남발될 경우 법안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할 상임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정책 정당을 주장해온 바른미래당이 선거제 개혁을 위해 여러 쟁점 법안을 심사숙고 없이 패스트트랙 열차에 태우는 것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 변수”라고 설명했다.

심 위원장 방침대로 실제로 15일에 선거법이 패스트트랙의 궤도에 오르면 국회 파행이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법 개정을 제1 야당의 합의 없이 처리한 전례가 없어 패스트트랙이 가동되면 한국당이 모처럼 열린 3월 임시국회를 또다시 전면 보이콧할 가능성이 크다. 여의도 정가에선 “패스트트랙은 실제로 가동하려는 목적보다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압박용’ 카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패스트트랙 (신속처리 안건)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재적 의원 5분의 3 찬성으로 특정 법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면 330일 뒤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한 제도. 법안 처리가 무한정 늦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도입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