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 조선사' 탄생 본궤도…한국 조선 재도약 시동

현대重그룹 대우조선 인수 확정…'1강 1중' 체제로 재편
LNG선 등 수주 경쟁력 우위…기업결합 심사·노조반발 변수

현대중공업그룹이 8일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확정 지으면서 독보적인 세계 1위의 '매머드급' 조선사 탄생이 본궤도에 올랐다.업황 부진 속에 수년간 출혈 경쟁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온 한국 조선업은 '1강 1중' 체제를 통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 압도적 수주잔량 확보·기술 경쟁력 우위 공고화

현대중공업그룹은 산업은행과 합작법인 '한국조선해양'(가칭)을 만들어 그 아래 자회사로 두는 방식으로 대우조선을 품에 안는다.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대우조선 등 4개 조선 관련 계열사를 거느리는 초대형 조선업체로 거듭난다.

조선업계와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현대중공업그룹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천114만5천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점유율 13.9%)의 수주잔량을 보유했다.
584만4천CGT(7.3%)를 보유해 2위인 대우조선의 것을 합치면 통합 회사의 총 수주잔량은 1천698만9천CGT, 점유율은 21.2%까지 각각 늘어난다.이는 3위인 일본 이마바리조선소 수주잔량 525만3천CGT(6.6%)의 3배가 넘는 규모다.

도크(선박을 건조하는 대형 수조) 수를 봐도 현대중공업(11개)과 대우조선(5개)이 합쳐지면 총 16개가 돼 규모 면에서 경쟁상대가 사라진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 인수를 계기로 이미 한국 조선이 선점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선종 수주전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고히 다질 것으로 기대된다.클락슨 집계를 보면 작년 한 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 총 69척 가운데 현대중공업그룹이 29척, 대우조선이 18척을 각각 수주했다.

단순 계산하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이 합쳐질 경우 전 세계 LNG선 발주 물량 가운데 70% 가까이 확보할 기술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월 열린 2018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연구개발(R&D) 통합, 중복 투자 제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재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며 "기술 공유를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면 결국 원가절감이 가능해지고 이것이 수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대우조선이 쇄빙선, 잠수함 등 특수선 분야에서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방산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점쳐진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해양 군수물자인 함정, 잠수함 등을 생산하고 있어 방위사업법상 주요 방산업체로 분류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방산업체 경영분석'에 따르면 2017년 함정 분야 매출 총 1조6천380억원 중 대우조선이 8천838억원, 현대중공업이 4천184억원으로 두 회사가 전체 함정 매출의 79.5%를 가져갔다.

특히 대우조선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 100대 방산업체 중 85위를 기록할 정도로 이 분야에 경쟁력이 있다.

양형모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의 방산 수주 잔액은 5조원을 상회한다"며 "중장기적으로 대우조선의 방산 부문은 지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조선 업황은 서서히 회복되는 국면이다.

클락슨 리서치는 지난해 1천16척이던 전 세계 총 선박 발주량이 올해 1천225척으로 늘고, 2021년에는 2천3척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 조선업 '1강 1중' 체제로 재편…출혈 경쟁 해소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로 한국 조선업은 오랫동안 굳어졌던 '3강' 체제에서 '1강 1중' 체제로 바뀐다.

이와 같은 조선업 구조 개편은 세계적으로 업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여겨졌다.
글로벌 선박 수주 시장이 공급 과잉인 상태에서 대형 3사 간 벌어졌던 과도한 출혈 수주 경쟁이 사라져 정상적인 선가 확보를 통한 수익성 개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 유럽 조선사들은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왔다.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는 일본 내 8개 중소 조선소를 인수해 세계 선두급 조선사로 성장했으며, 최근 대형 선박 건조로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역시 국영조선소인 선박공업집단공사(CSSC)와 선박중공집단공사(CSIC) 간 합병으로 대형화를 시도했다.

네덜란드 다멘은 설계 등 핵심 기능은 본사에 두고 저임금국 32개국에 중소 야드를 인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이날 본계약 서명 직후 공동발표문에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 인수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산업인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1강 1중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삼성중공업이 자체적으로 더욱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공급 과잉 해소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두업체와의 격차가 벌어져 삼성중공업의 독자 생존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수주 잔량만 놓고 봐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을 합친 규모(1천698만9천CGT)는 삼성중공업(4천723CGT)의 4배에 달한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중공업그룹·대우조선 통합 회사의) 경쟁사인 삼성중공업은 상대적으로 원가 경쟁력이 약화하고 대부분 선종에서 점유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 통합이 완전히 마무리되려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먼저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기업결합 심사 자체가 통상적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데다 점유율이 50%에 이르는 초거대 조선사의 탄생이 독점 체제 논란을 불러와 여러 국가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한다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양사 노조의 반발도 변수다.

사업 영역이 거의 유사한 두 회사 간 결합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등을 우려한 노조가 합병에 반대하면서 잡음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이날 대우조선 노조원 500여명은 산업은행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했고, 현대중공업 노조 간부 100여명도 '대우조선 인수 밀실 합의 중단저지 결의대회'를 여는 등 상경 투쟁을 벌였다.이와 관련해 이동걸 산은 회장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은 "생산성이 유지되는 한 대우조선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보장은 기존 현대중공업그룹과 동일한 조건으로 지켜질 것"이라며 고용안정을 약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