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경영개입으로 '연금사회주의' 현실화"

바른사회시민회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진실' 북콘서트
앞줄 왼쪽부터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광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뒷줄 왼쪽부터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정호 전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민간기업을 정부 정책 수단으로 삼는 것과 같다. 진정한 기업가는 배제되고, 강성 노동조합이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국민연금에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대해 법·경제학자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8일 서울 인사동 펜앤드마이크 문화센터에서 연 북콘서트에서다. 콘서트는 8명의 국내 대표 법·경제학자가 함께 발간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진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기업가치 훼손으로 국민 자산에 피해를 입힌 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수탁자로서 주주가치와 국민 이익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게 정부의 도입 명분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지난 2월 한진칼에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민간기업을 정책 수단으로 만들 것”

책 발간을 주도한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로 인해 민간기업이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공기업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행 스튜어드십 코드는 합리적 근거 없이 정부 이념에 따른 기준을 모든 투자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라며 “민간기업이 정부 기업이 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진정한 기업가는 배제되고, 강성 노조가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민간기업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만들고, 기업 부실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이 강화돼 공공의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김정호 전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타깃으로 하는 ‘오너 경영’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문경영자보다 오너 체제의 성과가 높다”며 “오너를 전문경영자로 대체하면 기업 성과가 떨어져 투자자 수익이 줄고, 장기적으로 근로자 소득과 일자리마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뜯어고쳐야”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정부에서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최광 전 복지부 장관(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초빙교수)은 “기금 운용은 국민연금공단에 맡기고 복지부는 감독만 해야 한다”며 기금 운용이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것은 그 자체가 문제이기에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도 “선진국은 국가 연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독립된 연기금 지배 구조를 확립해 왔다”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 자율에 맡겨야”

이번 콘서트에 모인 학자들은 기관투자가가 글로벌 시대에 맞는 다양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스스로 도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제안했다.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은 여러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검토하고, 제대로 운영하는지 모니터링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시행은 기관투자가 자율에 맡겨야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주요 대리기구인 의결권 자문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신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