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목의 선전狂 시대] 직원들의 아이폰 구매 막고 화웨이 폰 쓰라는 중국 기업들

애플 아이폰 사면 승진기회 박탈
화웨이폰 구입에는 25~50% 보조금 지급
중국 기업들의 '애국 경쟁'
애플 아이폰의 중국 시장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작년 4분기에만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2%나 줄었다. 2016년 사드 위기를 기점으로 점유율이 급속히 추락한 삼성전자를 보는 듯 하다.

이같은 배경에 미중 무역전쟁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분석이다. 직접적으로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중국 소비자들의 반(反)애플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지난해 말부터는 중국 기업들이 조직적으로 애플 불매에 나서고 있다. 애플을 구입하는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면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다.

해당 중국 기업들의 공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국 기업을 응원하고 외국산 물품을 배격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선전에 있는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인 멍파이의 공문이다. 화웨이의 협력사로 가장 먼저 직원들에게 화웨이 스마트폰 구입을 조직적으로 장려하기 시작한 업체다.‘화웨이를 성원하기 위한 통지’라는 글에서 회사는 화웨이와 ZTE 등 미국에서 제재를 받은 중국산 스마트폰을 사는 직원에게 제품 가격의 15%를 보조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품을 먼저 구입하고 영수증을 가져오면 현금을 내주는 방식이다.

아울러 애플 아이폰을 사는 직원에게는 해당 제품의 가격만큼 벌금을 물리겠다고 공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회사는 미국산 부품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회사 컴퓨터와 자동차 역시 미국산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무역전쟁의 연장선에서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는 곧 업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확산됐다. 저장성의 한 IT업체가 게시한 공문이다. 이름부터 ‘애플을 억제하고 화웨이를 지지하기 위한 통지’라고 밝혔다.애플 제품을 구입하는 직원에게 벌금을 넘어 인사조치를 하겠다고 공포했다. 통지 이후 아이폰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면 승진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한층 더 체계화됐다. 관리자 이상의 직원이 화웨이 제품을 구입하면 구입가의 50%를 보조한다고 공표했다. 일반 직원은 20%를 보조한다.

재미있는 점은 아이폰을 화웨이 폰으로 바꾸는 직원에게는 더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이다. 구입가의 20%인 보조금이 ‘전향자’에게는 25%로 뛴다.
샨시성의 상거래업체 리안그룹은 관리자 및 연구원들에게 화웨이 제품 구매를 아예 강제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 명분으로 ‘데이터 안전’을 든 점이다. 미국이 보안상의 문제로 화웨이 제품 구매를 막고 있으니 중국도 같은 근거로 미국산인 아이폰 구매를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내 각 지역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는 화웨이 제품만 구입하도록 하는 한편, 관리자들과 엔지니어들은 화웨이 제품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강제사항이고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선택을 하는 대신 20%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는 전체 그룹 직원을 대상으로 화웨이 스마트폰을 사용한 사진 촬영 대회를 연다고도 했다.

이같은 흐름은 중국 기업들의 강한 민족적인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의 여론은 생각만큼 우호적이지는 않다. 기업이 임의로 직원들의 선택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평론이 많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도덕적 가치를 타인에게 강제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들이 ‘화웨이 장려, 애플 억제’에 나서는 것은 실보다 득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정부 및 국가의 영향력이 큰 중국에서 당국이 보기에 ‘애국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화웨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업들까지 경쟁적일 정도로 관련 대책을 내놓는 배경이다.

사드 이후 한한령이 중국에서 작동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 정부나 공산당이 지방 정부와 개별 기업들에 “어떻게 하라”고 하나 하나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기층 단위’들은 중앙 정부의 분위기에 맞춰 알아서 행동 지침을 정한다.중국적인 현상이다.

선전=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