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총 시즌 본격화…행동주의 공세 '눈길'

한진-KCGI·현대차-엘리엇 대결…스튜어드십코드도 영향
주총 분산·전자투표 확산에도 정족수 미달 우려 '여전'
사진=연합뉴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화하고 있다.10일 업계에 따르면 당장 이번주(11∼15일)에만 상장기업 119곳이 주총을 개최한다.

특히 주요 기업들 가운데 ▲LG전자, 포스코, 기아차, 신세계는 15일 ▲ 삼성전자는 20일 ▲ 현대차는 22일 ▲ SK텔레콤, 현대중공업, 셀트리온은 26일 ▲ 대한항공, 한진은 27일에 주총을 각각 연다.

올해 주총 시즌에서 눈길을 끌 일은 주주 행동주의(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의 '창'과 대기업 오너·경영진의 '방패' 사이에서 벌어질 대결이다.특히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으로 발언권을 키우고 있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가 주목된다.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곳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에 휩싸인 한진그룹과 행동주의 펀드 KCGI가 격돌하는 한진칼, 한진 및 대한항공 주총이다.

KCGI는 한진칼에 대해 감사·이사 선임 및 이사 보수한도 제한 등의 안건을 제안했으며, 한진그룹 회장인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의 이사 연임에도 반대하고 있어 표 대결이 불가피하다.KCGI는 최근 한진칼 지분을 12.01%, 한진 지분을 10.17%까지 각각 늘리는 한편 조 회장이 한진칼 지분 3.8%를 차명 소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등 전방위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에 한진그룹은 지배구조 개선·배당확대 등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조 회장이 한진칼·한진·대한항공 3사 외 나머지 계열사의 임원직을 내려놓기로 하는 등 주주들의 표심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시장의 눈길은 대한항공 2대 주주(지분율 11.56%)이자 한진칼의 3대 주주(지분 7.34%)인 국민연금에 쏠린다.앞서 지난달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변경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정관이 통과되면 27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 중인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이사직에서 사실상 해임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사 연임 반대'는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총에서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은 있다.

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해 국민연금이 22%가량의 동조 지분을 확보하고 반대표를 던지면 조 회장 연임을 저지할 수 있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도 현대차·현대모비스에 8조3천억 규모의 고배당을 요구하며 압박에 나선 상태다.

작년 주총 당시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기업들이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주총 대란'이 올해 재연될지도 관심사다.

섀도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불참한 주주의 의결권을 한국예탁결제원이 대신 행사하는 제도다.

2017년 말 이 제도가 폐지된 뒤 작년 주총 시즌에는 56개 상장사가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를 선임하지 못한 바 있다.

금융당국과 유관 기관들은 주총 대란의 재연을 막고자 주총 일정을 최대한 분산하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를 손쉽게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예탁원에 따르면 지난 8일까지 주총일이 확정된 1천619개사 중 313개사가 오는 22일, 307개사가 29일, 239개사가 27일을 각각 주총일로 선택했다.

이에 따라 주총이 가장 많이 몰린 3일간의 주총 집중도가 53.1%로 2017년의 70.6%나 2018년의 60.3%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이 진행하는 '주주총회 분산 자율준수 프로그램' 등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기업 수는 현재까지 847개사(전체 12월 결산법인 2천11개사 중 42.1%)로 작년의 758개사(39.1%)를 이미 넘어섰다.

전자투표제 도입도 활발해 미래에셋대우의 무료 온라인 전자투표 서비스 '플랫폼V'는 지난달 15일 개설 이후 3주 만에 이용 기업이 276개사로 늘었다.

예탁원의 주총 전자투표 시스템(K-eVote)을 이용하기로 계약한 상장사도 지난달 13일까지 1천217개사로 전체 상장사의 58%에 이르렀다.

예탁원은 전자투표 계약사가 정족수 미달로 단 한 개의 안건이라도 부결되면 100만~500만원의 이용료 전액을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전자투표 이용 주주에게는 커피 쿠폰을 증정하는 등 전자투표 참여를 늘리는 데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상장사협의회가 1천928개 상장사의 지분 구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주총에서 154개(8.2%)사가 정족수 미달로 감사·감사위원 선임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또 이사 선임, 재무제표 승인 등 다른 보통결의 안건의 경우 408개사(21.2%)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에 미달해 부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금융투자협회 등은 의결권 확보가 어려운 기업들을 집중지원 대상으로 선정, 증권사를 통해 주주에게 연락하는 등 주총 운영을 지원할 계획이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주주 위임장을 받기 위해 영업직원 수백 명이 본업을 제쳐둔 기업들도 적지 않다"며 "의결권 확보 대행업체를 쓰려는 기업들도 있지만, 대행업체들이 수억원대의 이용료를 요구하면서 기업들이 매우 힘들어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회원사들에 최대한 주총일을 분산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나 결국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며 "현실적인 방향으로 관련 규정 개선 등을 국회 등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기업의 주총 일정이다.

▲ 15일: LG전자, LG화학, 포스코, 기아차, 신세계, 효성 등 99개사
▲ 20일: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27개사
▲ 21일: 삼성생명, SK이노베이션 등 102개사
▲ 22일: 현대차, 현대모비스, SK하이닉스,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한국전력, 네이버 등 313개사
▲ 25일: SK케미칼 등 138개사
▲ 26일: LG, SK텔레콤, 현대중공업, 셀트리온, 셀트리온제약 등 207개사
▲ 27일: 대한항공, 한진, SK, 신한금융지주, 현대중공업지주, 한화 등 239개사
▲ 28일: 에쓰오일 등 120개사
▲ 29일: 아시아나항공, 엔씨소프트 등 307개사(자료=한국예탁결제원, 8일까지 주총일 확정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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