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환율 조작국' 늘리려는 美…한국, 대책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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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미국의 무역적자가 세계 경제에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상품수지 적자(종전 무역적자)가 8913억달러로 건국 이후 243년 만에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가장 신경을 쓴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도 4192억달러로 전년 대비 11.6% 급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실패다. 출범 이후 감세와 뉴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한 후유증이다. 국민소득 3면 등가 법칙(X-M=(S-I)+(R-E), X: 수출, M: 수입, S: 저축, I: 투자, R: 재정 수입, E: 재정지출)으로 따진다면 너무 많이 썼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달러 강세 정책으로 선회한 것도 무역적자가 늘어난 요인이다.대(對)중국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보복관세가 ‘핵폭탄’이 아니라 ‘물폭탄’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국과의 소득격차가 워낙 커 보복관세 부과 이후 중국 수출품의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미국은 수입할 수밖에 없어 수입금액이 더 늘어난다. 무역통계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급부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달러 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생적 게임’이 아니라 ‘이기적 게임’을 즐기기 때문에 달러 강세 정책을 재평가해 달러 약세 정책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금리 인하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문제는 달러 약세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무역적자가 개선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러 약세가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마셜-러너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입 구조는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초기 단계에선 ‘J-커브’ 효과로 무역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rcury)’로 표현되는 경제 요인과 ‘마스(Mars)’로 지칭되는 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머큐리 요인만 따진다면 달러 가치는 강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마스 요인에 따라 달러 약세를 추구한다면 교역국으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미국 국익만을 생각하는 달러 약세 정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교역국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달러 약세에 대응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율전쟁’이다. 다른 하나는 ‘탈(脫)달러화’로, 화폐 발행 차익 축소 등을 감안하면 미국이 받는 충격이 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는 이 방안으로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주목해야 할 것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에 트럼프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MMT의 핵심은 이렇다. 물가에 문제가 없는 한 재정적자(쌍둥이 이론에 의해 무역적자도 포함)와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러를 찍어 써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MMT는 달러 가치와 관련해 종전의 ‘트리핀 딜레마’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도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부채 증가로 신뢰도가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다음달 중순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올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국가가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2016년부터 적용해온 BHC(베넷-해치-카퍼)법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이 너무 엄격해 1년 전부터 트럼프 정부는 이 조건을 완화하는 문제를 검토해왔다.빠르면 올해 상반기부터 적용될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1988년 종합무역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대규모 경상흑자 △유의미한 대미국 무역흑자 중 하나만 걸리더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교역국을 상대로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수 있는 근거로 대미국 흑자국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 환율전쟁과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대책을 세워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고사하고 인식조차 못하는 분위기다. 국민이 답답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