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거짓말쟁이·악마'로 지칭했던 그들의 증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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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오 신부 "헬기 사격 목격"…피터슨 목사 "여러 명이 함께 목격"
軍 부인·검찰 수사로 묻혔지만…지난해 5·18 특조위서 38년 만에 확인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1일 법정에 섰다.전씨가 회고록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취지로 쓴 내용이 허위 사실인지, 전씨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썼는지가 재판의 주요 쟁점인데, 그가 '거짓말쟁이'와 '악마'로 각각 지칭한 조 신부와 고(故) 피터슨 목사의 당시 증언을 다시 살펴봤다.
◇ 조비오 신부와 피터슨 목사의 '헬기 사격' 증언
조 신부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처음 언급한 것은 1989년 2월 3일 방영된 MBC의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에서였다.당시 '5월 기념재단' 이사장이었던 그는 방송에서 "80년 5월 21일 오후 2시 헬기에서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조 신부는 이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도 출석해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2시 정도에 상공에서 헬기 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는 기관총 소리가 드르륵 세 번 울리고 동시에 불이 나갔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헬기 기총소사로 사망자가 발생한 현장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나중에 김주오라는 사람으로부터 불로교 광주천변 양쪽에 있던 시민 20여명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이후 1980년 당시 무장헬기를 타고 공중 정찰 임무에 참가했던 제1항공여단장과 31항공단장 등은 기자회견을 자청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추가 증언이 나왔다.
그해 4월 공개된 증언록에서 피터슨 목사는 "5월 21일 오후 3시 30분께 계엄군 헬리콥터 3∼4대가 시민들에게 총을 난사해 이날 하루 광주 기독병원에서만도 사망자 14명과 부상자 1백여명이 목격됐다"고 증언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남침례회 소속으로 광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피터슨 목사는 1989년 5월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0년 5월 21일 오후 3시 15분께 광주 상공에 3~4대의 헬기가 나타나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헬기가 총을 발사할 당시 아내 바바라와 또 다른 미국인 1명, 한국인 3∼4명이 함께 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묻힌 진실…새로운 증거 발견으로 38년만에 확인
당시 두 성직자의 증언은 군 관련자들의 부인과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묻혔다.
전씨는 회고록에 '헬기를 이용한 기총소사까지 감행했다는 등 차마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전해지고 있다.
헬리콥터의 기총소사에 의한 총격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당시 항공단장의 진술로 증명되었다'고 기술한 것처럼 군 관계자는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은 10여명에 달하고 이들 모두 "21일 오후께 광주 동구 주변을 돌아다니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일관되게 진술했으나, 검찰 수사에서는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결론 내려졌다.
1995년 5월 검찰은 ▲ 군관계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 ▲ 반대 증언 확보 ▲ 기총사격 대량인명피해와 피탄 흔적 등이 없음 등을 근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헬기 사격의 진실은 이렇게 역사 속에 묻히는 듯했으나, 2016년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탄흔이 다시 논란을 불붙였다.
건물 10층에서 외부에서 날아든 것으로 보이는 탄흔이 다수 발견되자 5월 단체와 광주시 등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에 착수해 '발사 위치는 호버링(hovering·항공기 등이 일정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것)상태의 헬기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사용 총기 종류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들에게 헬기 사격을 했고, 공군이 무장 전투기를 대기시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약 5개월간에 걸쳐 62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190개 대대급 이상 군부대 및 관련 기관, 군 관계자와 목격자 등 총 120명을 조사했다.그 결과 특조위는 "군의 지시문서와 명령, 목격자 증언,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탄환 등을 근거로 광주에 출동한 헬기 40여 대 중 일부 500MD 공격헬기와 UH-1H 기동헬기에서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결론 내렸다./연합뉴스
軍 부인·검찰 수사로 묻혔지만…지난해 5·18 특조위서 38년 만에 확인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1일 법정에 섰다.전씨가 회고록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취지로 쓴 내용이 허위 사실인지, 전씨가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썼는지가 재판의 주요 쟁점인데, 그가 '거짓말쟁이'와 '악마'로 각각 지칭한 조 신부와 고(故) 피터슨 목사의 당시 증언을 다시 살펴봤다.
◇ 조비오 신부와 피터슨 목사의 '헬기 사격' 증언
조 신부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처음 언급한 것은 1989년 2월 3일 방영된 MBC의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에서였다.당시 '5월 기념재단' 이사장이었던 그는 방송에서 "80년 5월 21일 오후 2시 헬기에서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조 신부는 이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에도 출석해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2시 정도에 상공에서 헬기 소리와 함께 지축을 울리는 기관총 소리가 드르륵 세 번 울리고 동시에 불이 나갔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헬기 기총소사로 사망자가 발생한 현장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나중에 김주오라는 사람으로부터 불로교 광주천변 양쪽에 있던 시민 20여명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이후 1980년 당시 무장헬기를 타고 공중 정찰 임무에 참가했던 제1항공여단장과 31항공단장 등은 기자회견을 자청 "무장헬기에 의한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추가 증언이 나왔다.
그해 4월 공개된 증언록에서 피터슨 목사는 "5월 21일 오후 3시 30분께 계엄군 헬리콥터 3∼4대가 시민들에게 총을 난사해 이날 하루 광주 기독병원에서만도 사망자 14명과 부상자 1백여명이 목격됐다"고 증언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남침례회 소속으로 광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피터슨 목사는 1989년 5월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0년 5월 21일 오후 3시 15분께 광주 상공에 3~4대의 헬기가 나타나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헬기가 총을 발사할 당시 아내 바바라와 또 다른 미국인 1명, 한국인 3∼4명이 함께 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묻힌 진실…새로운 증거 발견으로 38년만에 확인
당시 두 성직자의 증언은 군 관련자들의 부인과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묻혔다.
전씨는 회고록에 '헬기를 이용한 기총소사까지 감행했다는 등 차마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전해지고 있다.
헬리콥터의 기총소사에 의한 총격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이 당시 항공단장의 진술로 증명되었다'고 기술한 것처럼 군 관계자는 '헬기 사격'을 부인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증언은 10여명에 달하고 이들 모두 "21일 오후께 광주 동구 주변을 돌아다니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일관되게 진술했으나, 검찰 수사에서는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고 결론 내려졌다.
1995년 5월 검찰은 ▲ 군관계 기록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점 ▲ 반대 증언 확보 ▲ 기총사격 대량인명피해와 피탄 흔적 등이 없음 등을 근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헬기 사격의 진실은 이렇게 역사 속에 묻히는 듯했으나, 2016년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탄흔이 다시 논란을 불붙였다.
건물 10층에서 외부에서 날아든 것으로 보이는 탄흔이 다수 발견되자 5월 단체와 광주시 등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에 착수해 '발사 위치는 호버링(hovering·항공기 등이 일정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것)상태의 헬기에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나 사용 총기 종류에 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1980년 5월 21일과 5월 27일 광주시민들에게 헬기 사격을 했고, 공군이 무장 전투기를 대기시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약 5개월간에 걸쳐 62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190개 대대급 이상 군부대 및 관련 기관, 군 관계자와 목격자 등 총 120명을 조사했다.그 결과 특조위는 "군의 지시문서와 명령, 목격자 증언,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한 탄환 등을 근거로 광주에 출동한 헬기 40여 대 중 일부 500MD 공격헬기와 UH-1H 기동헬기에서 광주시민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결론 내렸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