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신화' 이채욱 CJ그룹 부회장 별세

입사 17년 만에 CEO
"직원 마음 움직인 리더"

대기업·외국계·공기업 CEO 30년
CJ그룹 첫 전문경영인 부회장
이채욱 CJ그룹 부회장이 지난 1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이 부회장은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민간기업과 외국계 기업, 공기업 등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며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194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72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89년 삼성물산 해외사업본부장에서 삼성과 제너럴일렉트릭(GE)이 합작한 GE의료기기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한국GE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고 2008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선임됐다.CJ그룹엔 2013년 영입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CJ그룹 임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눈여겨본 게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CJ그룹에서 처음 맡은 직책은 CJ대한통운 대표이사 부회장이었다. CJ그룹 관계자는 “세계적 기업인 GE에서 CEO로 재직하며 얻은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방식을 CJ그룹에 적용하고, 그룹의 물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필요하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부터는 지주회사인 CJ(주) 대표를 맡아 당시 구속 중이던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을 메우며 그룹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다. 2016년 이 회장의 사면을 계기로 제주에서 연 그룹 경영진 워크숍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자신의 폐섬유화 관련 질환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당시 “2013년 CJ그룹이 영입 제안을 했을 때 폐섬유화가 진행돼 딱딱하게 굳는다는 병원의 진단과 ‘길어야 3년’이라는 선고를 받았다”며 “3년간 그룹에 피해가 갈까 봐 숨기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내가 사는 건 ‘덤’으로 여기고 그룹 발전에 더 공헌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30년간 민간기업과 글로벌기업, 공기업 등에서 CEO로 재직한 것을 두고 능력과 덕(德)을 겸비한 게 비결이라는 평이 많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와 만나 “굉장히 유능하고 모든 걸 아는 후배였다”며 “건강 때문에 이 부회장을 잃은 건 CJ그룹으로서도 굉장한 손실이고, 무척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재현 회장도 그룹 경영진과 함께 빈소를 찾아 1시간가량 조문했다. 이 회장은 “오랫동안 뵙고 싶은 훌륭한 분인데, 너무 안타깝다”며 “글로벌 마인드와 추진력을 겸비한 경영자이자 긍정의 마인드로 조직원의 마음까지 움직인 리더”라고 말했다. 이어 경영진에게 “마지막까지 그룹 차원에서 잘 도와주라”고 당부했다.CEO로서 30년간 달려온 이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지난해 3월 CJ 정기주주총회에서 의장을 마지막으로 경영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후 치료와 요양을 지속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연주 씨와 딸 승윤(마이크로소프트 부장), 승민(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승은(GE헬스케어일본 본부장)씨, 사위 진동희(블랙록 이사), 최성수(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판사), 박영식(PWC컨설팅 근무)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은 13일, 장지는 경기 이천 에덴낙원이다. 02-3410-6917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