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한라시멘트에 베팅한 베어링PEA, 2년여 만에 2.4배 '대박'

PEF의 밸류업 사례탐구

빠른 의사결정으로 설비투자
수백억 비용 절감
▶마켓인사이트 3월 11일 오전 5시35분

2016년 7월 이사회에서 대체연료 비중을 높이기 위한 설비투자 안건이 통과되자 한라시멘트 임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경영진이 수년간 모회사인 라파즈그룹 프랑스 파리 본사에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던 건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주인이 2016년 4월 라파즈홀심그룹에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BPEA)로 바뀐 데 따른 변화였다.
베어링PEA는 지난해 1월 한라시멘트를 아세아시멘트에 매각했다. 매각 가격은 7740억원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PEF업계 전문지인 프라이빗에쿼티인터내셔널은 기업가치를 2.4배 높이고, 70% 이상의 기록적인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한 이 거래를 ‘2018년 올해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로 선정했다.

빠른 의사결정으로 체질 개선2000년부터 세계 최대 시멘트회사인 라파즈의 한국 계열사이던 한라시멘트는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적용 가능한 설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매각 후 설비 투자가 이뤄지면서 한라시멘트는 2015년 20.6%이던 대체연료 비중을 지난해 29.3%(예상치)까지 높였다. 펫코크(석유정제 부산물) 비중도 늘렸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본 공장과 석회석광산을 비롯해 경북 포항, 전남 광양, 인천 등 항구도시에 생산시설을 둔 한라시멘트는 전체 물량의 70~80%를 선박으로 운송했다. 운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베어링PEA는 8000t급 전용 선박 구입을 승인했다. 이 덕분에 한라시멘트는 매년 20억원의 물류비를 줄일 수 있었다.

베어링PEA는 한국에서 운영하던 라파즈의 여러 법인을 모두 인수해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고 기술 이전도 완료했다. 브랜드를 재정립(리브랜딩)해 매출의 2%를 매년 로열티로 내던 계약도 없앴다.빠른 의사결정은 베어링PEA가 오랫 동안 한국 시멘트산업을 연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한철 베어링 한국 대표는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들과 비교한 결과 한국 시멘트회사 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며 “2015년 기준 7개 회사가 과당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4~5개 회사의 과점시장으로 재편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수익성 개선으로 빠른 투자금 회수

베어링PEA의 체질 개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한라시멘트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2014년 682억원에서 2016년 958억원으로 연평균 18.5% 증가했다. 2017년 상반기 직전 12개월치 상각 전 영업이익은 103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예상보다 빨랐던 엑시트도 베어링투자회수위원회로 대표되는 베어링PEA만의 독특한 회수전략 때문이었다. 투자회수위는 기업 인수를 검토하는 시점부터 전체 투자기간에 일괄 매각, 부분 매각, 배당금을 통한 투자금 회수, 상장(IPO) 등 모든 엑시트 옵션을 검토한다.

한라시멘트의 조기 매각도 투자회수위가 일찌감치 잠재 인수자 그룹을 파악하고 모니터링한 덕분이다. 2017년 7월 현대시멘트 인수전이 한일시멘트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다른 시멘트와 레미콘회사들이 은밀하게 한라시멘트에 ‘러브콜’을 보냈다. 한라시멘트 인수가 국내 시멘트 시장 재편의 마지막 기회라는 확신에서였다.

후보들의 인수 의지가 강해 적정한 가치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투자회수위는 전격적으로 한라시멘트 매각을 결정했다. 2017년 7월 매각작업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2018년 1월 아세아시멘트로의 매각을 완료할 정도로 엑시트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