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대지진 발생일에 '원전 필요성'강조한 日 게이단렌 회장

일본 최대 경제인 단체인 게이단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회장이 원자력발전 활성화와 관련한 소신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8주년이었던 11일에도 기자회견에서 “원자력 발전은 장래에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카니시 회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원자력을 사용한 에너지가 먼 장래에도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쟁을 더 깊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8주년을 맞은 일본에서 여전히 만만찮은 세를 과시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 지지자들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입니다.나카니시 회장은 “감정적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원전을 좋아하냐, 싫어하냐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는데 그런 식의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정부와 민간에서 원자력 발전 관련 연구에 정진(一生懸命)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원전은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을 설득할 힘은 없다”며 원전 문제와 관련, 강경파 반(反)원전론자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반원전 단체와 논의를 하는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처럼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격한 표현도 나왔습니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태도가 조심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재생에너지만으로 일본의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효율적인 재생에너지)기술개발이 실패할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며 일본 정치권에 좀 더 원전 가동을 활성화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원전 가동 중단(축소)으로 비싸진 전기 값에 일본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드러냈습니다. 나카니시 회장은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일본은 (다시) 일어설 수 없다”며 “그런데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몇 년이 지났지만 (다양한 에너지원 확보를 위한 노력에)달라진 것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원전 등 전력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는 게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의 분석입니다.앞서 나카니시 회장은 올 2월 시즈오카현 하마오카원전을 방문한 자리에서 “원자력발전과 원자폭탄을 (구분하지 않고) 머릿속에 결부시키는 사람에게 ‘그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고 발언,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원전 재가동의 필요성과 원전 문제 토론의 어려움을 강조하는 발언이었다고는 하지만 표현이 다소 과격했다는 것이 일본 사회의 반응이었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들이 일제히 가동을 멈추고, 현재도 일부만 운영에 들어간 일본에선 원자력 발전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력 발전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비싸진 전기요금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영향이 큽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54기에 달했던 일본 원전들은 일제히 가동을 멈췄었습니다.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2030년까지 ‘원전 가동 제로(0)’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원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가동을 늘린 탓에 LNG수입이 급증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2011년 일본이 31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로 돌아섰고 이후 5년 연속 적자 수렁에 빠지는데 LNG값 부담이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이에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180도 돌려세웠습니다. 2030년까지 에너지의 22~24%가량을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원전 재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전에 대한 우려 탓에 원전 재가동에 대한 반대여론이 적지 않고, 신규원전 건설이 이뤄지지 않아 일본의 전체 전력원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편입니다. 현재 재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후쿠이현 오이원전 등 9기에 불과합니다. 2017년 말 현재 전체 전력원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1%로 지진 발생 전(25.1%)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현재 원전의 빈자리는 LNG,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가 메꾸고 있습니다. 2010년 65.4%였던 화석연료 비중은 2017년 80.8%까지 높아졌습니다.

문제는 원유와 LNG 등 화석연료는 가격 변동이 심해 안정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전기요금 상승으로 국민과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는 점입니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월 260kWh를 사용하는 가정의 경우, 지난해 전기료(월 7015엔)는 대지진 전에 비해 25%(약 1400엔)가량 상승했습니다. 대지진 이전 일본 2인 이상 가정 소비지출의 4.4~4.7% 가량을 차지했던 전기·가스요금은 2013년 이후 5.2~5.8%로 높아졌습니다. 전기료 인상으로 가구당 전력 소비량은 줄였지만 전체적인 전기료 지출 규모는 증가했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화석연료 발전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점에서 친환경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이에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원전에 대한 홍보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고, 집권 자민당 내에서도 원전 신·증설을 염두에 둬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전 제로’주장했던 일본 야당 내에서도 의견 균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 여름 참의원(상원)선거를 앞두고 야당간의 원전 정책을 둘러싼 입장차이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입헌민주당은 ‘조기 원전제로 달성’을 여전히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민주당은 원전 재가동을 용인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태도입니다. 국민민주당은 ‘원전제로’라는 목표를 유지하더라도 목표달성 시기를 현실적으로 미루고, 현재 진행 중인 원전 재가동에 대해서도 엄격한 안전기준을 철저하게 적용하면 용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원전 정책과 관련, 한국 못지않게 의견 대립이 심한 일본이 과연 어떤 식으로 원전정책을 자리매김해 나갈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