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정치화…여론과 당략, 부처 간 알력에 휘둘리는 갈짓자 조세 정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우선 딱 1년만 하자는 것이구만. 시간을 좀 벌자는 뜻이구만.”(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

“정부가 조세저항을 극복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으면 1년 연장하고 다음에 안한다고 발표하세요. 그럴 자신 없이 1년씩 연장하면서 마치 돈 나눠 주듯이 이런 식으로 운용하는 것은 반대합니다.”(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지난해 11월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시한 만료) 연장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과거 2~3년씩 연장하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을 단 1년만 연장하는 세법 개정안을 내놨기 때문이었다. 참석한 의원들은 이례적으로 짧은 일몰 연장에 대해 정부가 올해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위한 포석으로 이해했다. 이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보시절인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지난 4일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도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여론 악화에 부딪힌 기재부가 지난 11일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연장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그동안의 폐지 검토는 ‘없던 것’이 됐다.

정부가 세제 정책에 대해 잇따라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면서 ‘세금의 정치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장기 재정운용방향과 조세 원칙에 의해 결정돼야할 세제 개편이 여론과 당략, 부처 간 알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업상속세제 강화하더니…기재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증권거래세 인하와 가업상속공제 완화도 입장 번복의 사례로 꼽힌다. 기재부는 여권에서 제기돼 온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인하에 대해 지난 1월 중순까지 줄곧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왔다. 연간 6조~8조원 규모의 세수가 줄고, 부동산 거래세와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홍남기 부총리가 지난 1월16일 기자들과 만나 “증권거래세 문제는 기재부 내부에서 아직 밀도 있게 검토한 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15일 금융투자업계 현장 간담회에서 증권거래세 폐지 또는 인하에 대해 “이제 공론화할 시점”이라고 말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월3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증권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이날 토론회에서 밝혔던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방침도 기존 세제 개편 방향과 배치된다. 홍 부총리는 당시 “가업상속을 받은 후 동일하게 유지해야 하는 업종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7년 개정 세법에서 중소·중견기업 가업상속 시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가업영위기간을 늘리는 등 과세 강화방안을 담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가업상속을 어렵게 만들었다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투자활성화를 위해 뒤늦게 완화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 많아지난해말 추진된 신용카드 매출 세액공제 한도 확대도 당초 기재부 방침과 배치된다. 기재부는 줄곧 “신용카드 비과세 감면은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오다 지난해 8월 청와대와 여당 요구로 마련한 자영업 대책에서 입장을 바꿨다. 연매출 10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한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한도를 기존 연 500만원에서 연 700만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후 확대 방안을 시행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석 달 만에 또다시 발표한 자영업 대책에서는 한도를 연 1000만원까지 높이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비자가 부담한 부가세를 갖고 자영업자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기재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처 간 알력에 따라 세제 개편이 바뀌기도 했다. 기재부는 지난 1월 입법예고한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특허를 보유한 수혜법인이 기술적 전·후방 연관 관계에 있는 특수관계법인과 불가피하게 거래한 부품·소재 매출은 일감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지난 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에는 이 같은 내용이 삭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이 세제 혜택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완화하려던 큰 줄기의 세제 정책이 좌초될 수 밖에 없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재부가 고유 전문 영역인 세제와 관련해 이렇게 휘둘려서는 안된다”며 “명확한 조세원칙을 갖고 여당과 청와대,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