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5년 송전탑 갈등' 마침표

한발씩 양보했지만
"기업 추가부담으로 해결"

삼성·주민대책委 상생협약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탑 건설을 두고 빚어진 지역 주민과 한국전력의 갈등이 해소됐다. 왼쪽부터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 김창한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 김봉오 원곡면송전선로대책위원장, 김종화 한전 경인건설본부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역 주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창한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전무)은 고개부터 숙였다.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에서 열린 ‘서안성~고덕 송전선로 건설 상생협력 협약식’에서다. ‘송전철탑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입은 경기 안성시 원곡면 주민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협약식에서 원곡면 주민과 한국전력, 삼성전자가 송전선로 건설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경기 평택 반도체 공장 전력 공급을 가로막았던 ‘송전탑 갈등’이 5년 만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본지 3월 11일자 A1, 3면 참조

“국익 생각해 달라” 주민 설득

송전탑 갈등은 건강권과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전 구간 지중화’를 요구해온 원곡면 주민과 반도체 공장에 적기에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삼성전자, 산악지역 지중화는 선례가 없다던 한전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벌어졌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경기 안성)의 중재로 모든 이해당사자가 조금씩 양보하는 내용의 중재안이 마련됐다. 주민들이 지중화를 요구한 산간지역 1.5㎞ 구간에 대해 △지상 송전탑과 지하 터널을 동시에 건설해 △공사기간이 짧은 송전탑이 2023년 건립되면 송출을 시작하되 △2025년 터널이 완공되면 선로를 터널에 넣고 송전탑은 철거한다는 것이 중재안의 핵심이다. 김 의원이 지역 주민을 설득한 근거는 ‘국익’이었다. “해외에 공장을 지으려던 삼성을 설득해 국내로 돌렸는데, 송전선로가 제때 건립되지 않으면 앞으로 삼성전자가 국내에 공장을 짓겠느냐”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경제계에서는 이번 협약이 사회적 갈등 해결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회의 중재로 사업자와 지역 주민이 조금씩 양보한 끝에 ‘대타협’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다.“기업 팔 비틀어 나쁜 선례 남겨”

일각에서는 ‘갈등 비용’이 지나치게 커져 기업 환경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추가 비용은 모두 삼성전자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송전선로 지중화를 위해 기존 사업비 3490억원에 482억원의 부담금이 추가됐다. 변전소에 들어가는 변전설비 비용을 포함하면 삼성의 부담금은 5950억원(추가 부담금 75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 유치 전쟁’이 벌어지는 해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공장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선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각종 규제 해결은 물론 용수·전력 인프라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업무협약(MOU) 당사자였던 안성시는 협약에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피해 보상을 위해 추가적인 ‘상생 협력안’을 요구했지만 삼성과 한전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실질적인 피해 지역인 원곡면 주민들조차 “대승적으로 양보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잇속 챙기기’에만 골몰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안성시는 “삼성전자 협력업체를 안성시에 유치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미 지난해 갈등조정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나온 안이다. 송탄 상수원보호구역 규제 때문에 안성시에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없어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사안이다. 안성시가 MOU 체결을 빌미로 ‘생떼’를 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삼성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비용을 지급하고 갈등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은 미봉책”이라며 “기업으로서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더 커진 측면도 있다”고 우려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