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메이트' 제조 SK케미칼 부사장 구속…"증거인멸 염려"

납품업체·제조사·판매사 임원 잇단 구속…검찰 수사 '탄력'
가습기 살균제 사태 터지자 '유해성 실험결과' 숨긴 혐의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하는 가운데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임원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관련 자료를 은폐한 혐의로 구속됐다.2011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를 낸 '가습기 메이트' 제조·판매사 고위급 임원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검찰 수사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4일 SK케미칼 박철(53)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송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검찰은 박 부사장과 함께 SK케미칼 이모(57)·양모(49) 전무와 정모 팀장에 대해서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송 부장판사는 이·양 전무와 정 팀장의 영장 기각사유에 대해 "(이들의) 지위 및 역할, 관여 정도, 주거 관계, 가족 관계, 심문 태도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 부사장은 '가습기 메이트'의 유해성 연구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면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그는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끝으로 퇴직해 2012년 SK그룹으로 옮긴 검찰 출신이다.

SK디스커버리와 SK가스 윤리경영부문장을 맡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자료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당시인 1994년 10∼12월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다.SK케미칼은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에 의뢰한 흡입독성 실험 결과 안전성이 확인돼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혔으나, 언론·국회 등이 자료를 요구하자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며 숨긴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김철 SK케미칼 대표는 2016년 8월 열린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서도 거듭 "문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해당 자료를 확보했다.

보고서에 나타난 검사 결과 역시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케미칼은 문제의 유해성 연구 자료를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뒤인 2011년 10월께 수소문해 입수했으나, 전체 50여 페이지 중 12페이지만 남아 있었던 데다 작성자도 명시되지 않은 사본이라 진위를 구별할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에 자료를 임의 제출했기에 증거를 인멸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SK케미칼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인 PHMG와 '가습기 메이트' 원료인 CMIT·MIT를 모두 제조한 회사이기도 하다.

2016년 검찰의 옥시 수사 때 PHMG가 가습기 살균제에 쓰이는지 몰랐다고 주장해 기소를 피했으나, 검찰은 이 또한 거짓 주장이라고 볼 만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CMIT·MIT에 대해선 '유해성은 알고 있었지만 기준치를 지켜 사용했으며, 흡입 시 유해성은 제대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관련자의 신병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 13일 '가습기 메이트'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한 필러물산 전 대표 김모 씨를 구속기소 한 데 이어 같은 달 27일에는 판매사인 애경산업의 고광현(62) 전 대표와 양모 전 전무를 각각 증거인멸 교사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다.SK케미칼 임원진도 구속됨으로써 '가습기 메이트'에 관여한 회사 관계자들이 모두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