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협약, 勞 요구는 다 들어주고…경영계만 압박하는 경사노위

경사노위, 이달말 논의 종료
'勞 편향' 합의 제안 논란

경총 "勞 편중…수용 불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의 박수근 위원장(가운데)과 공익위원들이 18일 서울 종로 경사노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에 대한 공익위원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을 논의 중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공전하고 있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가 지난해 11월 ILO 협약 관련 1차 논의를 마치고 단체교섭·쟁의행위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려 했으나 노동계의 반대로 회의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립을 지켜야 할 위원장(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마저 친(親)노동 성향을 드러내면서 경영계를 압박하고 있다.
노동계 요구 대폭 수용해놓고…노사관계위 공익위원들은 18일 ‘ILO 기본협약 비준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을 내놓고 노사 양측의 합의 도출을 촉구했다. 특히 “경영계의 태도가 소극적”이라며 논의 공전의 책임을 경영계로 돌렸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해직자 노조 가입 허용 등 노동계 요구는 다 반영해놓고 경영계의 핵심 제안은 논의조차 않겠다면서 무슨 논의를 하느냐”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박수근 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늦어도 이달 말까지 노사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ILO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법개정 논의에 대한 최종적인 사회적 합의를 마무리할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ILO 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작년 7월 출범한 노사관계위는 11월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계의 숙원사업이던 해직자 조합원 인정, 공무원 노조 가입범위 확대 등을 대거 수용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내놨다. 수십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노사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자 차선책으로 노·사 위원을 뺀 공익위원 7명만 합의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합의안은 국내 노동관행과 판례를 뒤엎고 노동계에 편향된 방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당시 공익위원 합의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우선 ILO 안건부터 처리하고 경영계 제안 이슈를 다루자’는 경사노위 제안에 대한 경영계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 1월 경영계 추천 공익위원이 ‘초안’을 내놓자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은 거래대상이 아니다”며 곧바로 보이콧을 선언했다.

경영계 핵심 요구사안은 ‘나 몰라라’

경영계 추천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주요 제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현행 2년) 연장 △파업 시 사업장 무단점거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명확화 등이었다.이 가운데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명확화 등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물론 적지 않은 노동 전문가도 개선 필요성을 지적하는 부분이다. ‘노동계 대부’로 불리는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협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은 노동계가 받아들일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노사관계위는 노동계가 아니라 경영계에 논의 지연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공익위원 간사인 이승욱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는 충분한 협상 의사가 있다는 게 감지되는데 경영계는 전혀 협상 의지를 감지할 수 없었다”며 “협상을 결렬시킨 주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내고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는 반드시 균형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현 위원회는 객관적, 중립적으로 진행되지 못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비판했다.이어 “위원회에서 경영계 요구사항에 대해 제대로 검토되지도 못했다”며 “경영계 핵심 요구 사항을 뒤로 미루자는 공익위원 제언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달 말까지 논의…합의 안 되면 국회로

노사관계위는 이달 말까지 노사 합의를 추진한 뒤 합의가 무산되면 별도의 공익위원안을 내지 않고 국회에 논의 경과만 넘긴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노사정 합의 없이 그동안 개진된 노사 의견을 참고해 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동관계법 개정에 들어가게 된다.

유럽연합(EU)은 한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에 규정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작년 12월 FTA 분쟁해결절차를 개시했다. EU 측은 다음달 9일까지 협약 비준에 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면 다음 단계인 전문가패널로 회부한다는 방침이다.이 교수는 “전문가패널의 결정이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ILO 핵심협약 미비준이 FTA 문제로 비화하는) 최초의 선례가 된다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입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있고 국회가 이를 존중한다고 하면 EU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