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 '선거제 내분' 폭발…패스트트랙 열차 멈추나

유승민 등 보수파 8명 의총 요구
패스트트랙 저지 나서

갈라지는 '한지붕 두가족'
캐스팅보트 놓고 치열한 數싸움
< 심각한 3당 원내대표 >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부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가 19일 선거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의원 등 바른미래당 내 옛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19일 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과 관련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며 실력 행사에 나섰다. 선거법 패스트트랙의 당내 추인을 검토하고 있는 김관영 원내대표 행보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선거법 패스트트랙 운명이 바른미래당 내부 갈등과 맞물려 예측 불허 상황에 내몰리는 모습이다.

지상욱 의원 “지도부가 당헌·당규 파괴”바른미래당 보수파 의원 8명은 이날 의원총회 소집요구서에 공동 서명한 뒤 원내지도부에 제출했다.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좌장 격인 유승민·정병국 의원을 비롯해 유의동·이혜훈·지상욱·하태경 의원 등이 서명했다. 국민의당 출신 가운데서도 보수 색채가 짙은 김중로·이언주 의원이 동참했다. 이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연계를 비롯한 패스트트랙 처리 등 중대한 현안 논의를 위해서”라고 의원총회 소집 이유를 밝혔다. 의원총회는 소속 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열어야 한다. 바른미래당은 20일 의원총회를 소집해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의원총회 소집을 주도한 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별도 입장문을 내고 김 원내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원내지도부가) 의회민주주의와 당헌·당규를 함께 파괴하고 있다”며 “당을 자신의 생각대로 몰고가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각각의 생각들이 다르더라도 이를 한데 모아야 할 의무를 지닌 게 원내대표”라고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김 원내대표는 이들 의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패스트트랙 동참으로 마음을 굳힌 분위기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훨씬 더 많은 의원이 패스트트랙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므로 다수 의견을 대변해 일 처리를 하는 게 원내대표 책무”라고 말했다.바른미래당 ‘분란 촉진제’ 패스트트랙

바른미래당 내 분란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양측의 주도권 싸움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은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내년 총선에 앞서 선거법을 고쳐 정당의 생존 기반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반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통합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선거법과 함께 여당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은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관심은 다른 데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선거법 패스트트랙 추인을 위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냐는 요건을 두고 양측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 원내대표는 “일부에서 (패스트트랙이 전체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구해서) 당론을 따르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당헌·당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법 문제인 동시에 많은 의원의 이해관계가 있으니 당 전체 의원의 의견을 수렴하겠으나,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 위원이 패스트트랙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당론을 모으는 절차가 의무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반면 유 의원 등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당헌·당규대로 3분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29명 중 의원총회와 당무 불참을 선언한 박선숙·이상돈·장정숙·박주현 의원 등 4명을 제외한 25명 중 17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날 의원총회를 소집한 의원 8명이 사실상 선거법 패스트트랙에 부정적인 점을 감안하면 의원총회에서 공식 추인을 장담할 수 없는 구조다.

정치권이 바른미래당의 내부 갈등을 주목하는 데는 패스트트랙 향배가 달렸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할 경우 총선을 불과 1년 앞둔 상황에서 선거법 논의는 급격히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줄곧 선거법 개정을 요구해온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책임 공방이 뒤따르면서 정치권 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거대 양당이 손해를 보는 구조의 선거법 개정 논의가 야당 내 이견으로 무산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캐스팅 보트를 쥔 김 원내대표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원내대표직까지 거는 배수진을 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