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공권력·머니 게임·뺑소니…한국사회 민낯, 스크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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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돈’ ‘우상’ 20일 개봉각양각색의 한국 영화 세 편이 20일 나란히 개봉한다. 드라마 ‘악질경찰’, 범죄물 ‘돈’, 스릴러 ‘우상’이다. 총제작비 60억~99억원으로 투자 규모 측면에서 중급 영화들이다. 이선균 한석규 설경구 류준열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출연했다.
봄 시즌 흥행몰이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은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악질경찰이 비리 기업가의 음모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범죄극이다. 주인공 조필호(이선균 분)는 사실상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다. 하수인 기철(정가람 분)을 시켜 금전출납기를 털고, 급기야 경찰 압수창고에까지 마수를 뻗는다. 그러나 기철이 원인 모를 폭발사고로 숨지고, 조필호는 용의자로 지목된다. 이때 조필호는 자신보다 더 악질인 경찰과 검찰로 인해 피살 위기에 내몰린다. 여기서 조필호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친구를 잃은 소녀와 얽히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첫 상업영화인 셈이다.
극 중 등장하는 경찰과 검찰은 ‘쓰레기’로 묘사된다. ‘쓰레기 공권력’은 욕설과 폭력을 남발하고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짓밟는다. 세월호 침몰로 학생들이 숨진 원인도 쓰레기 공권력이란 사실을 암시적으로 고발한다. 조필호보다 더 악질은 비행 기업가들의 하수인이다. 자본의 노예가 되는 순간 얼마든지 인성이 망가질 수 있다는 현장을 포착했다. 박해준은 악질경찰보다 더 나쁜 최악의 캐릭터를 맡았고, 소녀 역 전소니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박누리 감독의 ‘돈’은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 분)이 베일에 싸인 설계자 ‘번호표’(유지태 분)를 만나 거액을 건 작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번호표란 그를 만나기 위해 번호표를 들고 기다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 지방대 출신에 인맥도 부족한 일현은 출세를 위해 불법 작전에 가담하고 돈맛을 보면서 인성도 변해간다. 금융감독원의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 한지철(조우진 분)이 추적해 오면서 일현의 압박감은 고조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릇된 욕망을 비판하기보다 한탕주의 모험을 찬미하는 오락성 짙은 작품이다. 다양한 금융거래기법과 머니게임의 현주소를 음미해볼 기회다. 거래기법을 모른 채 게임의 관점에서 봐도 무방하다. 실제 주식 브로커 출신인 장현도의 소설 ‘돈: 어느 신입사원의 위험한 머니 게임’이 원작이다. 박 감독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지,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건지 자문하고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연출 배경을 밝혔다.
이수진 감독의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구명회(한석규 분)와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추적하는 아버지(설경구 분)의 이야기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사고 현장에 있다가 자취를 감춘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세 인물은 자신의 목적에만 충실하게 눈과 귀를 가리고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일종의 우상에 빠진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해간다. 근사한 외관 아래 숨겨진 추악한 내면, 피해자인 줄 알았더니 가해자였고 가장 연약한 인간이기에 가장 극악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이 스스로 우상을 맹신하지 않았는지, 외양에 속아 진실을 외면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