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압박에 떠난 공익위원이 "재미없어 갔다"는 노사관계위원장

현장에서

경영계 요구엔 '물타기' 평가 절하
'기울어진 운동장' 우려가 현실로

백승현 경제부 기자
“그분이 바쁜 분이다. 여기 와서 재미도 없으니 그만둔 것으로 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위원장인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공익위원 한 명이 사의를 밝힌 뒤 복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의를 밝힌 공익위원은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경영계 추천으로 위원회에 참여한 권 교수는 지난 1월 경영계가 제안하는 논의 의제 초안을 내놓은 뒤 노동계의 강한 항의와 압박을 못 이기고 사의를 밝혔다. 그런 권 교수를 두고 이 위원회 수장은 ‘바쁘신 분이 여기 왔다가 재미 없으니 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박 위원장은 국내 대표적인 진보 노동법학자 중 한 명이다. 이런 까닭에 지난해 7월 그가 노사관계위원장에 임명됐을 때부터 이 위원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리고 이 우려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됐다.

노사관계위는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자 우선 노동계 요구안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를 마무리하고, ‘파업 시 직장 점거 제한’ 등 경영계 요구안을 논의하기로 시간표를 짰다. 노사 요구안을 하나씩 나눠 논의하는 방식으로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였다.하지만 지난해 11월 ILO 핵심협약 관련 공익위원안이 발표된 뒤 경영계 요구안 논의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박 위원장은 경영계의 논의 요구에 “(ILO 협약 비준 합의를 흐리기 위한) 물타기”라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당시 노사관계위 한 위원은 “위원장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느냐”며 기자에게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회의체의 수장이 노동계 편을 들자 힘을 얻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경영계 제안 의제가 제시되자마자 보이콧을 선언했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이거늘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익위원을 중도사퇴한 권 교수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의 일부다. 사회적 난제를 대화로 해결하고자 깔아놓은 멍석에서 ‘심판’이 ‘선수’로 뛰면서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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