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세계 명문대와 창업 동맹…교수 300명 중 10%가 벤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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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울산·경주·포항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UNIST(울산과학기술원)는 전체 300여 명 교수 중 10%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고 있다.
정무영 총장 "연구 브랜드 사업화…글로벌 톱10 과기대 목표"
2015년까지 4개에 불과하던 교수 창업기업은 지난해 10개가 추가로 신설돼 총 30개로 늘었다. 전체 300명의 교수 중 10%가량이 사장인 셈이다.2009년 개교한 UNIST는 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처음부터 세계적 대학과의 협업이라는 전략을 택했다. UNIST 관계자는 “기술력 있는 교수들이 창업하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투자와 판로 개척”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미국 버클리대, 스위스 바젤대 등과 글로벌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의 이 같은 창업 지원은 정무영 총장의 수출형 연구 브랜드 사업화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정 총장은 “대학이 보유한 핵심 ‘연구 브랜드’를 상품화해 2040년까지 100억달러의 발전기금을 마련하고 세계 10위권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도약을 목표로 지속적인 교수벤처 창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UNIST가 보유한 원천기술을 개당 최소 1조원 이상 수출로 연결한다면 기금 조성에 큰 문제가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UNIST는 창업 지원을 위해 기업 규모에 따라 초기 투자부터 성장 단계에서의 투자, 투자 회수 단계에 이르는 전 주기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놓고 있다. 교원들의 유망 기술을 발굴하기 위해 선보엔젤파트너스가 교내에 상주하며 활동하고, 미래에셋대우는 성장단계 기업에 대한 투자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움을 준다. 여기에 울산시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UNIST 교원 창업활동은 가속도를 내고 있다.울산시가 지난 13일 UNIST에서 해수자원화기술연구센터 기공식을 연 게 대표적인 협업 사례로 손꼽힌다.
국·시비 등 175억원을 들여 UNIST에 2020년까지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5443㎡ 규모의 해수자원화기술연구센터를 건립한다.
센터는 해수전지 관련 첨단 생산설비와 시험설비를 갖추고 해수전지와 해수 담수화, 이산화탄소 포집, 해수 수소 생산 등 해수전지 전반에 관한 원천기술 개발 및 상용화를 추진한다. 해수자원화기술연구센터장은 2014년 세계 최초로 해수전지 개발에 성공한 김영식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교원 벤처기업인 포투원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해수전지는 물과 소금만 있으면 작동해 가정과 산업체의 에너지저장장치(ESS)는 물론 대형 선박 및 잠수함, 원자력발전소의 비상 전원 장치로도 활용 가능하다. 리튬이온전지보다 생산 가격이 절반 이상 저렴하며 폭발 위험도 적다. 김 대표는 “해수전지 기술을 수중 로봇, 어망용 위치확인시스템(GPS) 부이, 해수 담수화 사업 등 전 산업 분야로 널리 확산해 50조원 규모의 세계 ESS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울산시와 UNIST의 협업 덕에 2017년에만 6개의 교원 창업기업이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돼 각각 최대 10억원의 기술사업화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팁스에 선정된 교수 벤처기업은 리센스메디컬, 유투메드텍, 필더세임, 프런티어에너지솔루션, 슈파인세라퓨틱스, 이고비드 등이다.
김건호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가 창업한 리센스메디컬은 UNIST 벤처기업으로는 처음 팁스에 선정됐다. 기술보증기금이 우수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U-TECH 밸리 1호’ 기업으로 지정돼 10억원을 유치했다.
리센스메디컬은 망막 환자를 위해 빠르고 편안한 냉각마취 솔루션을 개발했다. 일반적인 망막 질환 치료에서는 환자 안구에 약품을 주사하는 안내주사요법(IVT)이 사용된다. 소요 시간이 길고 약물에 의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게 단점이다.
리센스메디컬의 냉각마취기는 시술 부위에 접촉만 하면 약물 부작용 없이 빠른 속도로 마취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냉각마취기 임상시험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절차를 거쳐 올해 미국 의료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김정범 생명과학부 교수는 바이오벤처기업 슈파인세라퓨틱스를 창업해 척수 손상 환자의 치료를 돕는 패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척수 손상 환자는 연간 50만 명에 이르지만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하반신 마비 등 2차 환자가 많다”며 “척수 손상 후 48시간 이내에 응급 처치가 가능한 패치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이 기술로 중기부 장관상을 받았다.
배준범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가 창업한 필더세임은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손가락 관절별 미세 움직임을 감지 측정하는 소프트 센서를 개발해 재활 및 의료시장 선점에 나섰다. 얇고 장갑처럼 착용하기 쉬운 구조로 설계돼 손가락의 정교한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어 손 재활에 최적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석상일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의 프런티어에너지솔루션은 차세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석 대표는 “200조원 규모인 세계 태양전지 시장에서 10%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로 채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양현종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의 이고비드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능동형 상황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배성철 생명과학부 교수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유투메드텍은 영상 진단기기와 알고리즘 개발을 통해 축농증을 쉽게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상용화에 나섰다.
지난해엔 무려 10개의 교수 벤처기업이 탄생했다. 교수 벤처기업은 그래핀엣지, 센서위드유, 이엠코어텍, 써니웨이브텍, 퓨전바이오텍, 서홍테크, HNB제노믹스 등이다.
백종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가 창업한 그래핀엣지는 첨단 그래핀 소재를 이용해 난연재 복합소재, 전도성 잉크, 백금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소촉매 소재 상용화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김채규 자연과학부 교수가 창업한 퓨전바이오텍은 인공항체 융합단백질을 이용한 암세포 표적기술과 차세대 약물 전달체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 항암제 시장만 연간 200조원 이상”이라며 “사업화를 통해 세계 시장 선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강현덕 생명과학부 교수가 창업한 서홍테크는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 기반 보행분석 시스템을 통해 스마트 족압 분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홍정한 경영학부 교수는 바이오 벤처기업 HNB제노믹스를 창업해 IoT와 AI 기반 맞춤형 건강증진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정 총장은 “UNIST를 울산형 실리콘밸리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