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만든 BBC 드라마 어떨까?

6부작 '리틀 드러머 걸' 국내 방영
영화적 기법 녹아든 '공간의 마법'
박찬욱 감독이 만든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격화된 1979년 유럽. 영국의 무명 여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는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작전에 투입된다. 현실을 무대처럼 여기고 연기를 하며 스파이 활동을 한다. 팽팽한 긴장감만 계속되진 않는다. 템포가 다소 느려지며 짙은 로맨스가 펼쳐진다.

연인으로 위장한 찰리와 정보국의 또 다른 요원 베커(알렉산데르 스카르스고르드)가 실제 사랑에 빠진다. 첩보 스릴러물에 로맨스를 더한 장르적 결합이다. 자칫 통속적일 수 있지만 독특한 미장센과 화려한 색감이 가득하다.박찬욱 감독(사진)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공개됐다. 박 감독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은 영국 BBC와 미국 AMC가 공동 제작해 지난해 말 두 나라에서 각각 방영됐다.

이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작품은 방송 버전과 다른 감독판이다. 원작은 스파이 소설의 대가인 존 르 카레의 작품. 박 감독은 이어진 간담회에서 “원작이 첩보 스릴러인 동시에 로맨스물이라는 점에 끌렸다”며 “나를 매료시킨 이런 특징들이 첩보 스릴러의 자극적인 요소에 압도돼 희석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드라마에 도전하게 된 것도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원작을 130분짜리 영화로 옮기려면 인물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한다”며 “작품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TV 드라마 형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품엔 박 감독만의 다양한 영화적 기법들이 녹아 있다. 특히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촬영은 그리스, 영국, 체코 세 나라에서 이뤄졌다. 각 도시의 배경이 연이어 빠르게 전환된다. 이를 통해 이질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조합해 냈다.

또 같은 장소에서도 개방된 공간과 폐쇄된 공간을 번갈아 비춰 대조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찰리와 베커가 함께 있는 장면을 보여줄 때도 교차편집의 묘미를 살렸다.감독판은 오는 29일 국내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사이트 ‘왓챠플레이’를 통해 6회 전편이 공개된다. 드라마버전은 채널A에서 같은 29일부터 6주에 걸쳐 한 회씩 방영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