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종교·철학 못잖은 詩의 힘, 삶에 지친 이들 보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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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걷는 마음

자신을 ‘아마추어 시 애호가’라고 소개한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사진)이 《시와 함께 걷는 마음》이라는 시 에세이를 출간했다. 저자는 현대차 사장, 현대산업개발 부회장을 지낸 원로 경영인이다. 그는 몇 년 전 우연히 서울 혜화초교 담장 옆 꽃길을 걷다 본 한 편의 시에서 느낀 감동을 이어가고 싶어 쓴 책이다. 책에 풀어낸 저자의 감상은 평론가들의 문학적 해제처럼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 일반 독자와 같은 시선으로 본 시에 대한 단상들은 마치 산책길을 걸으며 말하듯 자유롭고 청량하게 다가온다.그가 고른 명시(名詩)엔 기준이 있다. 짧고 운율이 잘 느껴져 암송이 쉬워야 한다. 음악적 리듬이 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와도 어울려야 한다. 이 기준에 맞는 시로 천상병의 ‘귀천’, 함석헌의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해인의 ‘감사예찬’, 장석주의 ‘대추 한 알’ 등 56수를 골랐다.

책은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가 어느 종교인과 철학자 못지않게, 어쩌면 더 효과적으로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준다는 점이다. 이생진 시인의 ‘너무나 많은 행복’을 읽은 뒤엔 “상상도 하고 꿈도 꾸고 어리석게 착각도 하면서 살아야 행복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허형만 시인의 ‘석양’을 읊은 뒤엔 “아름다운 순간과 장면을 많이 본 사람이야말로 부자”라고 강조한다. 역동성을 잃은 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마지막 시로 고른 유안진 시인의 ‘실패할 수 있는 용기’도 눈에 띈다. ‘젊음은 용기입니다/실패를 겁내지 않은/실패도 할 수 있는 용기도/오롯 그대 젊음의 것입니다’라는 시구를 통해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는 유 시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방주 지음, 북레시피, 296쪽, 1만38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