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최나연이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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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오브호프파운더스컵 1R“그냥 좋아요.”
11개월여 만에 LPGA 복귀
보기 없이 버디 7개 '완벽샷'
고진영 등과 함께 1타차 2위
최나연(32)이 돌아왔다. 지난해 4월 휴젤JTBC오픈을 기권하고 투어를 떠난 지 11개월여 만이다. 21일(현지시간) 개막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뱅크오브호프파운더스컵(총상금 150만달러)이 ‘원조 걸크러시’의 복귀 무대다. 모처럼의 실전 라운드였지만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노보기 7언더파 무결점 라운드
최나연은 이날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클럽(파72·6656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를 7언더파 65타로 마쳤다. 보기 없이 버디 7개만 잡는 ‘퍼펙트 골프’를 했다. 그가 18번홀을 걸어 나오자 친한 후배 신지은(27)이 샴페인을 뿌려주며 “복귀를 축하해!”라고 말했다.
최나연은 “친구들과 페어웨이를 같이 걸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성적은 보너스”라며 환하게 웃었다. 최나연은 고진영(24), 앨라나 유리엘(미국) 등 다른 4명의 선수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셀린 부티에(프랑스·8언더파)가 1타 차 단독 선두다. 세계랭킹 1위 박성현(26), 신지은이 6언더파로 공동 7위에 이름을 올렸다.최나연은 말 그대로 ‘어느 날 홀연히’ 투어에서 사라졌다. ‘은퇴했다’, ‘결혼했다’는 루머가 잠시 돌았지만 얼마 안 가 소문마저 희미해졌다. 최나연은 “아팠고 지친 때였다”고 회상했다.
이상 징후를 감지한 것은 통산 9승을 안겨준 2015년 6월 월마트아칸사스챔피언십에서부터였다. 클럽을 휘두를 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10주간 휴가를 냈다. 그러곤 대회 출전을 이어갔다. 통증이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멘탈이 무너졌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드라이버 입스(yips)가 찾아온 것이다. 공이 어디로 갈지 몰라 그립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완전히 망가졌어요. 은퇴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만 들었고요.”
한때 2위까지 올라갔던 세계랭킹은 486위까지 추락했다. 그즈음 LPGA투어 원로인 베스 대니얼(미국)과 맥 맬런(미국)의 조언이 귀에 들어왔다. “몸을 먼저 추슬러야 해. 그래야 멘탈이 돌아와.”병가를 내고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먹고 싶은 걸 먹었고, 깨고 싶을 때 잠을 깼다. 처음으로 ‘계획 없는 생활’에 몸을 맡겼다. 6개국을 그렇게 돌았다. 골프채는 잡지 않았다. 5개월쯤 지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골프가 그리워졌다. 그는 “완전히 다 타버린 번아웃(burn-out)이란 게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골프가 나를 기다려준 것 같다”고 했다.
“이젠 즐기는 골프 할래요”
돌이켜보면 골프밖에 없었다. “상자 속의 로봇처럼 살았어요. 골프만 생각하고, 골프만 치고, 심각하게 대회에 나가고, 성적이 안 나오면 낙담하고, 그게 몸과 마음을 다 갉아먹었던 것 같아요.”쉬는 동안 필라테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스윙을 교정했다. 1~2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라운드도 했다. 심각하게만 쳤던 예전과는 달리 최나연은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어떻게 치겠다, 어떤 스코어를 내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마음 비우기’가 우선이었다.
뱅크오브호프파운더스컵 1라운드가 ‘무심(無心) 골프’의 첫 번째 시험 무대였다. 시험은 2015년 마지막 우승 이후 76개 대회 만의 ‘1라운드 최고 성적’이란 보답으로 돌아왔다. 그가 첫 라운드에서 7언더파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은 2014년 8월 캐나디안퍼시픽오픈(8언더파 64타) 이후 처음이다. 최종 라운드까지 상승세를 유지할 경우 45개월여 만에 10승 고지를 밟게 된다.
“첫 티샷 때 너무 떨렸는데, 잘 끝내서 좋네요. 내가 돌아왔다고 다들 기뻐해주고, 이거면 됐어요. 이런 행복감이 다시 찾아와서….”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