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기·부가티·밀항시도…'이희진 부모살해'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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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드러나는 범행 흔적들…추가범죄 의혹 등 풀릴 듯
피의자, 이희진 동생 만난 이후 필리핀으로 밀항 시도 정황
'이희진 씨 부모살해' 사건은 최근 발생한 여러 가지 유형의 강력사건 중에서도 의문투성이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사건 발생과 시신발견 시점 사이의 격차, 4명의 범죄가담자 가운데 1명만 검거되고 나머지 3명은 중국으로 도망친 점, 범죄 동기의 불투명성, 증거인멸의 허술함, 주범격 피의자의 피살자 '코스프레', 피의자들 간 살인 책임 떠넘기기 등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의 '종합세트'다.
그러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격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검거된 주범격 피의자인 김모(34) 씨가 범행 전 이 씨 아버지(62)의 벤츠 승용차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놓은 것으로 확인돼 이 사건은 계획범죄라는 데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아울러 슈퍼카 부가티 매매증서의 등장은 그간 이음새가 빠져있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김 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피하거나 증거인멸 행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유족을 만나는 등 상식 밖의 행동 패턴을 보였다.
사건 당일 부랴부랴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공범 3명의 행동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 지낸 그의 행적은 의문을 사기 충분했지만,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의문들을 하나둘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 실종신고와 시신발견…주범격 피의자 검거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이희진(33) 씨 동생의 112 실종 신고부터이다.
서울에 살던 이 씨의 동생은 지난 16일 오후 4시께 "부모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그동안 어머니와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은 됐지만, 전화 연결은 통 안 됐던 터였다.
경찰이 신고자, 소방 관계자들과 함께 이 씨의 부모가 거주하던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를 찾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들여다본 내부는 별다른 이상 없이 깨끗했지만, 장롱 안에서 이 씨 어머니(58)의 시신이 발견됐다.
곧바로 경찰은 실종사건을 강력사건으로 전환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이 3주 전 영상에 찍힌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영상을 통해 김 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서 실종신고 하루 만인 지난 17일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그를 검거했다.
이후 김 씨에게 이 씨의 아버지 소재를 추궁해 같은 날 오후 4시께 평택의 한 창고에서 이 씨의 아버지 시신을 발견했다.
이 창고는 김 씨가 자신 명의로 임대한 곳이었다.
경찰은 김 씨와 함께 범행현장에 있었던 나머지 3명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 이들이 A(33) 씨 등 중국동포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들은 이미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뒤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범죄의 재구성
경찰이 그동안 확보한 증거와 김 씨의 진술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이번 사건을 되짚어보면 김 씨는 A 씨 등과 함께 지난달 25일 오후 3시 51분께 이 씨의 부모가 사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얼마 뒤 이 씨의 부모가 이 씨의 동생이 그날 슈퍼카인 부가티 차량을 판매하고 받은 대금 중 일부인 5억원이 든 보스톤백을 들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김 씨 일당은 이 씨 부모가 집으로 들어간 뒤 경찰을 사칭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해 집으로 들어갔고 김 씨 일당이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저항하자 이들을 살해하고 보스톤백을 빼앗았다.
같은 날 오후 6시 10분께 A 씨 등 공범들은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왔고 이들은 택시로 자신들이 거주하던 인천으로 이동해 짐을 꾸린 뒤 항공권 3매를 예약, 다시 택시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선 오후 11시 51분께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반면 김 씨는 사건 현장에 남아 뒷수습에 나섰다.
그는 공범들이 떠나자 오후 10시께 친구에게 "싸움이 났는데 와서 중재를 해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김 씨에게 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김 씨의 친구는 자신의 지인 2명에게 대신 가달라고 했고 결국 김 씨와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현장에 가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됐다.
이들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보고선 단순한 싸움 중재가 아니라고 판단, 김 씨에게 신고할 것을 권유하고 20여분 만에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김 씨는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3시 30분께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는 대리기사에게 이 씨의 아버지 소유 벤츠 차량을 운전하도록 한 다음 평택 창고 인근에 주차하도록 요구했다.
벤츠 차 안에는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이불 등을 담았고 창고에 도착, 대리기사 떠난 뒤에 이불 등을 불태웠다.
이후 날이 밝자 김 씨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빼내 평택 창고로 옮겼다.
냉장고를 옮긴 김 씨는 10시 10분께 범행현장을 빠져나왔다.◇ 위치추적기 발견…치밀한 계획범죄 정황
이 사건 범죄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은 범행 전반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경찰은 최근 이 씨의 아버지 소유 벤츠 차량에서 김 씨가 부착해 놓은 위치추적기를 발견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범행 2주 전에 달았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이번 범행을 최소 2주 전부터 준비했다는 의미이다.
위치추적기 발견으로 김 씨 일당이 어떻게 이 씨 부모가 귀가하는 것을 알고 아파트 입구에 미리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졌다.
다만, 김 씨는 "작년에도 한 번 부착했던 것 같다"고 진술하기도 해 훨씬 이전부터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발견된 위치추적기는 1대뿐이고 김 씨 진술에 오락가락하는 점이 많아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김 씨의 진술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확보한 위치추적기를 분석해 언제 부착됐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씨는 지난달 16일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할 팀원을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공범 모집에 나섰다.
당시 김 씨는 월 급여를 300만∼1천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고, 군인 출신과 운동선수, 깡(용기) 있는 분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김 씨 일당이 이 씨 부모에게 5억원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씨 변호를 맡은 김정환 변호사도 "김 씨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이 씨 아버지에게 겁을 줘 과거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2천만원을 받으려 한 것이지 5억원의 존재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돈 가방 속 부가티 매매증서…추가범행 노린 듯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 중 하나는 범행 이후 김 씨의 행적이었다.
김 씨 일당이 강탈한 보스톤백 안에 돈 말고도 부가티 매매증서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공범들과 달리 김 씨는 왜 도주하지 않았는지, 이 씨의 동생은 왜 만났는지 등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고 있다.
이 매매증서에는 차량대금이 15억원에 달하고 이 씨 부모가 갖고 있던 5억원을 제외한 남은 10억원이 이 씨의 동생 계좌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때문에 경찰은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을 상대로 추가범행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김 씨는 범행 이후 이 씨의 어머니 휴대전화를 챙겨 어머니인 척 이 씨의 동생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김 씨는 이 씨 동생이 전화통화를 시도하자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 여행 와 통화가 곤란하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특히 김 씨는 이 씨 동생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실제 당일치기로 일본 삿포로를 다녀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어머니 행세를 하던 김 씨는 급기야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봐라"는 식으로 말하고서 자신이 그 사업가인 척 이 씨 동생과 약속을 잡고 만났다.
경찰은 이 자리에서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에게 사업을 제안하며 추가범행을 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김 씨 측은 "이 씨의 동생에게 부모를 살해한 사실을 털어놓고 사죄하려고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의 동생을 만난 이유가 추가범행이건 사죄이건 김 씨는 이 만남 이후 흥신소를 통해 필리핀으로 밀항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러모로 이번 범행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보였던 김 씨는 이 씨 부부 실종신고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살해는 누가…남은 의문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번 사건의 의문은 이렇듯 하나둘 풀리고 있다.
사건 발생과 시신발견 시점의 격차는 김 씨가 이 씨의 어머니 행세를 해 이 씨 동생의 실종신고가 늦어진 탓이고 주범격 피의자인 김 씨가 도주하지 않은 이유와 김 씨가 이 씨 어머니 행세를 한 이유 등은 추가범행을 노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범행동기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김 씨는 이 씨의 아버지에게서 받아야 할 2천만원을 받기 위해 꾸민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피해 규모와 범행을 위해 김 씨가 준비한 치밀한 계획 등에 비춰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경찰은 피해자들의 아들인 이 씨가 불법적인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혐의로 막대한 돈을 챙긴 뒤 수감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이 씨가 챙긴 돈을 부모에게 몰래 넘기지 않았겠냐는 가정 혹은 확신에서 이번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준비 단계와 비교해 증거인멸을 비롯한 범행 착수와 이후 과정이 허술한 점도 의문이다.
그는 자신 명의로 빌린 창고에 이 씨 아버지의 시신과 차량을 방치하듯 버려뒀고 CCTV를 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대낮에 피해자들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누가 이 씨 부모를 살해했는지는 경찰이 결론 내려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김 씨는 검거 이후부터 줄곧 "공범들이 죽였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공범 A 씨도 최근 지인에게 보낸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메시지를 통해 "경호 일을 하는 줄 알고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왔다"며 역시 김 씨에게 죄를 떠넘기고 있다.
A 씨 등에 대해선 현재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중국 공안이 A 씨 등의 신병을 확보하면 국제사법공조를 거쳐 이들을 국내로 송환하겠다는 계획이다.김 씨에 대해선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내주 중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피의자, 이희진 동생 만난 이후 필리핀으로 밀항 시도 정황
'이희진 씨 부모살해' 사건은 최근 발생한 여러 가지 유형의 강력사건 중에서도 의문투성이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사건 발생과 시신발견 시점 사이의 격차, 4명의 범죄가담자 가운데 1명만 검거되고 나머지 3명은 중국으로 도망친 점, 범죄 동기의 불투명성, 증거인멸의 허술함, 주범격 피의자의 피살자 '코스프레', 피의자들 간 살인 책임 떠넘기기 등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의 '종합세트'다.
그러나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격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검거된 주범격 피의자인 김모(34) 씨가 범행 전 이 씨 아버지(62)의 벤츠 승용차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놓은 것으로 확인돼 이 사건은 계획범죄라는 데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아울러 슈퍼카 부가티 매매증서의 등장은 그간 이음새가 빠져있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김 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피하거나 증거인멸 행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유족을 만나는 등 상식 밖의 행동 패턴을 보였다.
사건 당일 부랴부랴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공범 3명의 행동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 지낸 그의 행적은 의문을 사기 충분했지만,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의문들을 하나둘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 실종신고와 시신발견…주범격 피의자 검거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이희진(33) 씨 동생의 112 실종 신고부터이다.
서울에 살던 이 씨의 동생은 지난 16일 오후 4시께 "부모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그동안 어머니와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은 됐지만, 전화 연결은 통 안 됐던 터였다.
경찰이 신고자, 소방 관계자들과 함께 이 씨의 부모가 거주하던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를 찾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들여다본 내부는 별다른 이상 없이 깨끗했지만, 장롱 안에서 이 씨 어머니(58)의 시신이 발견됐다.
곧바로 경찰은 실종사건을 강력사건으로 전환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이 3주 전 영상에 찍힌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영상을 통해 김 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서 실종신고 하루 만인 지난 17일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그를 검거했다.
이후 김 씨에게 이 씨의 아버지 소재를 추궁해 같은 날 오후 4시께 평택의 한 창고에서 이 씨의 아버지 시신을 발견했다.
이 창고는 김 씨가 자신 명의로 임대한 곳이었다.
경찰은 김 씨와 함께 범행현장에 있었던 나머지 3명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 이들이 A(33) 씨 등 중국동포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들은 이미 범행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뒤였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범죄의 재구성
경찰이 그동안 확보한 증거와 김 씨의 진술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을 토대로 이번 사건을 되짚어보면 김 씨는 A 씨 등과 함께 지난달 25일 오후 3시 51분께 이 씨의 부모가 사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얼마 뒤 이 씨의 부모가 이 씨의 동생이 그날 슈퍼카인 부가티 차량을 판매하고 받은 대금 중 일부인 5억원이 든 보스톤백을 들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김 씨 일당은 이 씨 부모가 집으로 들어간 뒤 경찰을 사칭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해 집으로 들어갔고 김 씨 일당이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저항하자 이들을 살해하고 보스톤백을 빼앗았다.
같은 날 오후 6시 10분께 A 씨 등 공범들은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왔고 이들은 택시로 자신들이 거주하던 인천으로 이동해 짐을 꾸린 뒤 항공권 3매를 예약, 다시 택시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선 오후 11시 51분께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반면 김 씨는 사건 현장에 남아 뒷수습에 나섰다.
그는 공범들이 떠나자 오후 10시께 친구에게 "싸움이 났는데 와서 중재를 해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김 씨에게 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김 씨의 친구는 자신의 지인 2명에게 대신 가달라고 했고 결국 김 씨와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현장에 가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됐다.
이들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보고선 단순한 싸움 중재가 아니라고 판단, 김 씨에게 신고할 것을 권유하고 20여분 만에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김 씨는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3시 30분께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는 대리기사에게 이 씨의 아버지 소유 벤츠 차량을 운전하도록 한 다음 평택 창고 인근에 주차하도록 요구했다.
벤츠 차 안에는 피해자들의 혈흔이 묻은 이불 등을 담았고 창고에 도착, 대리기사 떠난 뒤에 이불 등을 불태웠다.
이후 날이 밝자 김 씨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빼내 평택 창고로 옮겼다.
냉장고를 옮긴 김 씨는 10시 10분께 범행현장을 빠져나왔다.◇ 위치추적기 발견…치밀한 계획범죄 정황
이 사건 범죄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은 범행 전반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경찰은 최근 이 씨의 아버지 소유 벤츠 차량에서 김 씨가 부착해 놓은 위치추적기를 발견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범행 2주 전에 달았다"고 진술했다.
김 씨가 이번 범행을 최소 2주 전부터 준비했다는 의미이다.
위치추적기 발견으로 김 씨 일당이 어떻게 이 씨 부모가 귀가하는 것을 알고 아파트 입구에 미리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졌다.
다만, 김 씨는 "작년에도 한 번 부착했던 것 같다"고 진술하기도 해 훨씬 이전부터 범행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발견된 위치추적기는 1대뿐이고 김 씨 진술에 오락가락하는 점이 많아 사실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김 씨의 진술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며 "확보한 위치추적기를 분석해 언제 부착됐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씨는 지난달 16일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할 팀원을 모집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공범 모집에 나섰다.
당시 김 씨는 월 급여를 300만∼1천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고, 군인 출신과 운동선수, 깡(용기) 있는 분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김 씨 일당이 이 씨 부모에게 5억원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씨 변호를 맡은 김정환 변호사도 "김 씨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이 씨 아버지에게 겁을 줘 과거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2천만원을 받으려 한 것이지 5억원의 존재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돈 가방 속 부가티 매매증서…추가범행 노린 듯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 중 하나는 범행 이후 김 씨의 행적이었다.
김 씨 일당이 강탈한 보스톤백 안에 돈 말고도 부가티 매매증서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공범들과 달리 김 씨는 왜 도주하지 않았는지, 이 씨의 동생은 왜 만났는지 등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고 있다.
이 매매증서에는 차량대금이 15억원에 달하고 이 씨 부모가 갖고 있던 5억원을 제외한 남은 10억원이 이 씨의 동생 계좌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때문에 경찰은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을 상대로 추가범행을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김 씨는 범행 이후 이 씨의 어머니 휴대전화를 챙겨 어머니인 척 이 씨의 동생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김 씨는 이 씨 동생이 전화통화를 시도하자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에 여행 와 통화가 곤란하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특히 김 씨는 이 씨 동생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실제 당일치기로 일본 삿포로를 다녀오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어머니 행세를 하던 김 씨는 급기야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봐라"는 식으로 말하고서 자신이 그 사업가인 척 이 씨 동생과 약속을 잡고 만났다.
경찰은 이 자리에서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에게 사업을 제안하며 추가범행을 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김 씨 측은 "이 씨의 동생에게 부모를 살해한 사실을 털어놓고 사죄하려고 만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씨의 동생을 만난 이유가 추가범행이건 사죄이건 김 씨는 이 만남 이후 흥신소를 통해 필리핀으로 밀항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여러모로 이번 범행을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보였던 김 씨는 이 씨 부부 실종신고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살해는 누가…남은 의문은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번 사건의 의문은 이렇듯 하나둘 풀리고 있다.
사건 발생과 시신발견 시점의 격차는 김 씨가 이 씨의 어머니 행세를 해 이 씨 동생의 실종신고가 늦어진 탓이고 주범격 피의자인 김 씨가 도주하지 않은 이유와 김 씨가 이 씨 어머니 행세를 한 이유 등은 추가범행을 노렸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범행동기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김 씨는 이 씨의 아버지에게서 받아야 할 2천만원을 받기 위해 꾸민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피해 규모와 범행을 위해 김 씨가 준비한 치밀한 계획 등에 비춰볼 때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경찰은 피해자들의 아들인 이 씨가 불법적인 주식거래와 투자유치 혐의로 막대한 돈을 챙긴 뒤 수감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이 씨가 챙긴 돈을 부모에게 몰래 넘기지 않았겠냐는 가정 혹은 확신에서 이번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 준비 단계와 비교해 증거인멸을 비롯한 범행 착수와 이후 과정이 허술한 점도 의문이다.
그는 자신 명의로 빌린 창고에 이 씨 아버지의 시신과 차량을 방치하듯 버려뒀고 CCTV를 피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대낮에 피해자들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누가 이 씨 부모를 살해했는지는 경찰이 결론 내려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김 씨는 검거 이후부터 줄곧 "공범들이 죽였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공범 A 씨도 최근 지인에게 보낸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메시지를 통해 "경호 일을 하는 줄 알고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져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왔다"며 역시 김 씨에게 죄를 떠넘기고 있다.
A 씨 등에 대해선 현재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다.
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중국 공안이 A 씨 등의 신병을 확보하면 국제사법공조를 거쳐 이들을 국내로 송환하겠다는 계획이다.김 씨에 대해선 조만간 수사를 마무리하고 내주 중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