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 비준' 곧 막판 합의 시도…노사 팽팽한 대립

28일 노사관계 개선위 전체회의…합의 못 하면 국회로 공 넘어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이번 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막판 합의를 시도한다.24일 경사노위에 따르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오는 28일 전체회의를 개최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의 논의 시한이 이달 말로 잡힌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지막 전체회의가 될 전망이다.

노사관계 개선위는 작년 7월 발족과 동시에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논의에 착수했다.그해 11월에는 ILO 핵심협약과 직결되는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했다.

당시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제도 개선 문제도 논의할 것을 요구했고 노사관계 개선위는 이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으나 노·사의 팽팽한 의견 대립으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노사관계 개선위 공익위원들은 논의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 11일 쟁점을 정리한 자료를 노·사 양측에 제시한 데 이어 18일에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노·사가 이달 말까지 합의를 도출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노·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 관한 경영계의 5가지 요구안 중에서도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응한 대체근로 허용과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의 처벌 폐지 등 두 가지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따라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노동자 단결권을 강화할 경우 노조가 너무 강해질 수 있다며 대체근로 허용 등을 통해 힘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은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는 ILO 기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침해할 수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공익위원들은 경영계 요구안 가운데 노조의 사업장 점거 금지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은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장 점거 금지는 관련 판례 등을 근거로 부분적인 점거 금지를 도입할 수 있고 현행 최장 2년인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과거 3년으로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접점을 찾기 힘든 요구안은 뒤로 미루더라도 타협의 여지가 있는 요구안은 이달 말까지 합의를 도출해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게 공익위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경영계는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이 '핵심 요구 사항'으로, 양보할 수 없다며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경영계는 지난 18일 공익위원 기자간담회 직후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경영계가 노사관계 개선위를 보이콧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경영계는 회의에 참석해 논의는 계속하기로 했다.

노사관계 개선위는 이달 말까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논의 결과를 정리해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 경우 국회로 공이 넘어가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계속 미루자 EU는 작년 12월 분쟁 해결 절차의 첫 단계인 정부 간 협의를 요청했다.

EU는 한국이 다음 달 9일까지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지 않으면 정부 간 협의의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전문가 패널이 소집되면 한국의 한-EU FTA 위반 여부를 본격적으로 따지게 된다.

이 경우 한국은 FTA 노동 규정을 위반한 세계 첫 사례로 부각될 수 있다.

노동기본권 보장에서 후진적인 국가로 국제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얘기다.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은 제재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EU가 어떤 방식으로든 조치에 나서면 한-EU 교역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