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가배상 신청 '역대 최고'…실제 배상은 10%대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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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4건 접수…전년보다 33%↑지난해 정부의 과실 등으로 피해를 봤다며 국가배상을 신청한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도로·하천 등 공공시설물 관리 부실이나 공무원의 과실 등으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전국 14개 고등·지방검찰청에 설치된 지구배상심의회 심사를 거쳐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포트홀(도로에 난 구멍)로 자동차에 손상이 생겼거나 보도블록 파손으로 넘어진 경우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법원을 통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별개 절차다.
증거 조작 등 악용하는 사례 많아
국가에 대한 배상신청이 증가하는 것은 관련 제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져 사소한 손해를 봤더라도 배상신청의 문을 두드려보는 시민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허위증거를 내세워 배상을 요구하는 등 일부 악용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배상심의회를 통해 접수된 국가배상 사건은 6064건으로 2017년(4558건)에 비해 33.0% 증가했다. 배상을 요구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실제 배상을 받는 비율은 정체 상태다. 국가의 책임이 인정돼 배상이 결정된 건수는 지난해 1129건으로 접수 대비 인용률은 18.6%에 불과하다. 2017년(17.6%)에 비해선 소폭 올랐으나 2013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다. 2018년 지출된 국가배상액은 9억9300만원으로 전년(8억500만원)보다 23% 증가했다.
경미한 사건임에도 ‘혹시 모르니 한번 신청해보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당사자가 스스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소송과 달리 큰 품이 들지 않는다. 가령 포트홀 피해를 봤을 경우 사진과 블랙박스 정도만 제출하면 각 지자체와 도로교통공단 등의 사실조회를 거쳐 배상심의회가 알아서 판단한다.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증거 조작 등을 통해 제도를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진 것도 낮은 인용률의 이유다. 자동차 부품 교체 등을 앞두고 일부러 포트홀을 밟은 뒤 배상금을 요구하거나, 사고를 계기로 수리비를 과다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이런 사례가 다수 발견되면서 정부는 배상의 문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악의적 신청이 적발돼도 기각 결정을 내릴 뿐 해당 접수자를 처벌할 권한은 없다”면서 “그동안 국민 권익보호 차원에서 비교적 넓게 배상을 인정해왔으나 재정 누수 방지를 위해 올해부터 배상 심사를 깐깐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