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엄마 현실 육아] (44) '삐약삐약' 병아리를 집에서 부화시켰어요

'삐약삐약'

책이나 TV에서 보는 노란 병아리는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어미 닭을 졸졸 쫓아다닌다.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교문 앞에서 박스 가득 노란 병아리를 담아놓고 팔았기 때문에 가끔 부모님 허락도 없이 병아리를 사 오곤 했다. 손에 올려보면 너무 앙증맞아서 그 작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뿐더러 작고도 경쾌하게 '삐약~'하는데 안 데려오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며칠 안 가 죽고 말았고 막상 닭으로 성장한다 해도 아파트에서 키우기 또한 처치 곤란했던 경험이다.

큰 딸이 어디서 들었는지 "엄마 어릴 적엔 학교 앞에서 병아리도 팔았지? 아 좋았겠다. 왜 요즘은 병아리를 안 팔지? 나도 키우고 싶은데"라고 푸념 섞인 말을 했다.

귀엽기만 했던 병아리의 솜털이 깃털로 대체되는 그 과정이 얼핏 떠오르면서 '집에 키우는 강아지나 잘 돌볼 것이지 웬 병아리 타령인가'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나도 그런 걸 키우기 좋아했는데' 속으로 웃었다.
몇 년 전인가 딸아이 외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서 언젠가 유정란을 가져와 스티로폼 박스와 전구로 부화기를 만들어 본다고 설쳤던 적이 있다. '설마 진짜 부화가 되겠어?' 했는데 어이없게도 21일 후 진짜 병아리가 알을 까고 나오는 바람에 참으로 경이로웠던 경험이다. 하지만 며칠 만에 병아리가 죽어버렸고 그렇게 밤새도록 힘들게 알을 깨고 태어나는 과정을 내가 다 봤는데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우울증이 올 지경이었다.

때때로 냉정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엄마 코스프레를 하지만 뜻밖에(?) 잔정이 많아서 병아리가 죽었을 때도 몇 날 며칠 동안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왜 산에까지 올라서 묻어줘야 하냐며 투덜대는 아이들에게 작은 삽을 들려서 "힘들게 태어난 생명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아무 데나 버릴 순 없다.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명복을 빌어야 한다"면서 아이들은 추운 겨울 산으로 끌고 다녔다.
엄마의 눈물이 낯설고 어안이 벙벙했던 아이들은 나를 따라 울었고 그 후로는 쉽게 병아리 부화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힘든 과정을 다시 겪게 될 줄은 몰랐는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 딸은 '병아리 부화기'를 외쳤다. 지난번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제 더 안심하고 부화시킬 수 있는 부화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다마고치를 사달라고 했던 딸이 갑자기 병아리 부화기를 생각해 낸 것도 신기하고 은근 속으로 '한번 재도전 해볼까' 생각도 들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육아는 물론 병아리 부화도 장비빨이었던가. 틈만 나면 알을 굴려주고 온도계 시시때때로 체크하고 습도까지 맞춰줘야 했던 스티로폼 박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화기는 간편했다.

알아서 한 시간에 한차례 알을 굴려주고 온도를 37도로 고정시켜주는 것은 물론 습도조절까지 한 번에 해결됐다.

중간에 검란을 해보니 3개의 달걀 중 2개가 성공이다. 20일이 됐는데 한 개의 달걀 표면이 젓가락으로 콕 찍은 듯 이가 나간 듯한 자국이 나 있고 그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제 시작이구나. 두근두근.

달걀 안쪽에서는 미약한 '삐약' 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약 하루간 각각 사투를 벌인 끝에 병아리 두 마리가 태어났다.



'아 정말 이런 거 보면 달걀 도저히 못 먹겠어' 싶었는데 부화되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던 아이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막 태어난 병아리는 내가 봐도 솔직히 귀엽다고 보긴 힘든데 큰 아이는 "너무 귀엽다"면서 연신 싱글벙글이고 둘째는 "엄마 병아리 태어나는 거 보니까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요"라고 말해 나를 경악하게 했다. 아악. 왜왜왜! 난 아직도 사투를 벌이며 태어나 허공을 향해 다리를 허우적거리던 그 작은 생명을 보며 치킨을 떠올린 둘째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하다. ※워킹맘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부모i판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