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부모살해' 미스터리…드러난 사실ㆍ안갯속 의문은?

'우연의 일치' 주장했지만…계획적 강도살인 범죄 드러나
5억원 돈가방 사전인지ㆍ범행 '실행자' 규명은 남은 숙제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리는 이희진(33·수감 중) 씨의 부모가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은 범인들의 범행 동기부터 수법까지 그야말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사건이었다.
주범격 피의자인 김다운(34)이 검거된 지난 17일부터 사건 송치가 이뤄진 26일까지 열흘간 경찰은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치밀하게 계획된 강도살인 범죄라는 사실을 확인, 여러 우연의 일치가 결합한 범죄라던 그의 진술을 하나둘씩 깨뜨렸다.

다만 사건 가담자 4명 중 공범 3명이 미검인 데다, 주범과 공범 양 측 모두 피해자들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함에 따라 수사를 완전히 매듭짓기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 차량 위치추적기까지 부착…드러난 '계획범죄'
김 씨는 자신이 고용한 중국 동포 A(33) 씨 등 3명과 함께 지난달 25일 오후 안양시 소재 이 씨 부모의 아파트에 침입, 이 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현금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했다.김 씨 등은 피해자들보다 15분 먼저 아파트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가 경찰관을 사칭, 집 안으로 침입해 일을 저질렀다.

수사 결과 김 씨는 이 씨가 불법 주식거래 등 혐의로 막대한 돈을 챙긴 뒤 수감되자 이 씨 가족에게 숨긴 재산이 있으리란 막연한 가정 혹은 확신에서 적어도 1년 전부터 이 씨 부모를 대상으로 한 범행 사전준비에 돌입했다.

김 씨는 지난해 4월 이 씨로부터 피해를 본 주식투자 피해자 카페 관계자를 만나 이 씨가 벌인 '주식 사기 사건'에 대해 캐물었다.당시 김 씨는 자신을 탐정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씨 측을 드론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말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 진술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16일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글을 올려 공범을 모집, 사전 모의를 했다.

이어 범행 당일 새벽에는 이 씨 아버지의 벤츠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피해자들의 동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면서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김 씨는 이 씨의 아버지에게 빌려준 2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해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지만, 계획적 강도살인임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과 김 씨가 범행 은폐를 위해 표백제(락스)를 미리 준비한 점 등에 미뤄볼 때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매우 낮다.

김 씨의 진술 중 5억원 돈 가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진위 파악이 더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이 씨의 동생(31)은 사건 당일 슈퍼카 부가티를 판매하고 받은 차량 대금 15억원 중 5억원을 보스톤백에 부모에게 전달했고, 이는 고스란히 이번 사건의 피해 금액이 됐다.

부가티를 판매한 날이 강도살인 범행의 디데이(D-day)가 된 것에 대해 경찰은 우연의 일치로 결론내렸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 돈 가방에 든 '부가티' 매매증서…추가 범죄도 노렸다
김 씨는 범행 후 유족을 직접 만난 것은 물론 멀리 도피하거나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서지 않는 등 통상의 살인사건 피의자와는 다른 수상한 행보를 보였다.

김 씨는 범행 현장에서 획득한 이 씨의 어머니 휴대전화를 이용해 숨진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이 씨의 동생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급기야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봐라"라는 식으로 말하고선 이 씨의 동생과 직접 만나 사업 등의 얘기를 나눴다.

경찰은 김 씨가 범행 당시 5억원 돈 가방에서 차량 매매증서를 확인한 점에 미뤄 이를 이 씨를 상대로 한 추가 범행 준비 과정으로 판단했다.
차량 매매증서에는 부가티의 판매대금이 15억원에 달하고, 나머지 10억원이 이 씨 동생 계좌로 들어간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사건 당일인 지난달 25일 중국으로 달아난 공범 A 씨 등 3명과 달리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먼 곳으로 도피하지 않은 채 있다가 지난 17일 검거된 이유도 차량 매매증서를 대입하면 자연스레 설명된다.

김 씨는 이 기간 흥신소를 통해 필리핀으로의 밀항을 준비하기도 했다.

◇ '어정쩡한' 증거인멸…도대체 왜?
김 씨의 허술한 증거인멸 행위는 수사 초기부터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김 씨는 이 씨의 아버지 시신은 냉장고에, 어머니 시신은 장롱에 각각 유기하고는 범행 이튿날 오전 이 씨 아버지의 시신만 평택 창고로 옮기고, 어머니 시신은 그대로 뒀다.

이는 이 씨의 동생이 지난 16일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실종신고를 한 뒤 경찰이 집 안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곧바로 강력사건으로 수사를 전환, 하루 만에 자신이 검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당초 같은 방법으로 이 씨 어머니 시신도 외부로 빼내려 했다고 진술했다.

이 씨 부모의 자택에는 냉장고가 총 3대나 있었고, 이삿짐센터에도 냉장고 2대를 옮기겠다며 직원 여럿을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씨는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을 처리한 뒤 체력적 문제 등으로 어머니의 시신까지 냉장고에 유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이로써 범행 이후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패턴을 보인 김 씨의 행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됐다.

◇ 검거 피의자·달아난 공범 모두 "나는 죽이지 않았다"…남겨진 숙제
검거된 김 씨와 중국으로 달아난 공범 A 씨는 살해 범행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 등 3명을 고용하는 등 범행을 계획한 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이 씨의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건 공범들이라고 책임을 전가해왔다.

그는 지난 2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경찰서를 나서면서 취재진에 "제가 안 죽였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항변했다.
반면 A 씨는 정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다.

경찰은 A 씨 등의 주변인 조사 과정에서 A 씨가 중국 현지에서 국내 지인을 통해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위챗)으로 "우리가 (살해)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또 "경호 일을 하는 줄 알고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해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양 측의 입장이 첨예한 가운데 경찰은 김 씨가 이 씨의 부모에 대해 살해까지도 계획하고 범행에 나선 것으로 판단하고 강도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 26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아직 살해 범행의 '실행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가려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A 씨 등이 있었던 점은 분명한 만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위해 이들에 대한 신병 확보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경찰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중국 공안이 A 씨 등의 신병을 확보하면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국내로 송환해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