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니 열린 門…'외부인 출입금지, 단 정일문 예외'

CEO 탐구 -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고객 찾아 누빈 거리 지구 75바퀴
"100바퀴 채울 것"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직원 시절 구입한 차를 3년도 안 돼 바꾸곤 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내집처럼 누비는 바람에 차가 버텨내질 못했기 때문이다. 기름값이 하도 많이 나와 선택은 항상 디젤차였다. 그렇게 4대의 자동차를 바꾸다 보니 어느덧 임원이 됐다.

그는 지난 1월 한국투자증권의 새 사령탑에 취임하면서 “지금까지 지구 75바퀴(300만㎞)를 돌았는데, 앞으로 100만㎞를 더해 지구 100바퀴를 채우겠다”고 공언했다.‘별난 신입’에서 파격 승진자로

정 사장은 1988년 한신증권에 공채로 입사했다. 한신증권은 동원증권을 거쳐 지금은 한국투자증권이 됐다. 첫 부서는 고된 부서로 알려진 시장부였다. 서울올림픽 특수로 한국 증시가 호황을 맞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시장부 직원들은 전국에서 전화 등으로 들어오는 주식 주문을 모두 손으로 작성해 한국거래소에 가서 신청해야 했다. 새벽에 별을 보며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정 사장은 대졸 공채 신입 중 유일하게 기피 부서로 꼽히는 시장부에 지원했다. ‘증권을 제대로 알려면 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정 사장은 입사하자마자 ‘참 희한한 신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시장부에 이어 그가 간 곳은 기업금융 부서였다. 당시는 기업공개(IPO)나 회사채 발행 등 증권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회사들을 찾아가면 정문 앞 수위가 그를 가로막기 일쑤였다. 정 사장은 “문전박대를 당해도 계속 찾아가다 보니 안면을 트게 되고, 회사 실세가 누구인지 등 영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 정보를 쉽게 얻기 어려웠던 시절 그는 전국을 발로 뛰었다. 고객사를 찾아갈 때 일부러 전에 갔던 익숙한 길과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새로운 길을 지나다니면서 새로운 고객사를 발굴했다. 처음 보는 기업 이름은 적어뒀다가 나중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 영업을 했다. 그런 노력을 인정한 한 기업이 정문에 ‘외부인 출입금지, 단 동원증권 정일문 예외’라고 써붙이기도 했다. 지금도 정 사장은 이 일을 가장 자랑스러운 경험 중 하나로 여긴다.

정 사장은 “직장생활 초기에는 승진이 조금 느린 감이 있었다”며 “한참이 지나서야 동기들과 승진 속도가 비슷해질 정도로 평범했다”고 했다. 벤처 열풍이 거셌던 1990년대 후반부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IPO 주관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는 2004년 차장에서 부장을 건너뛰고 바로 상무보로 특진해 증권가의 화제가 됐다.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정 사장은 2004년 투자은행(IB)본부의 주식발행(ECM)부 상무, 2005년 IB본부장, 2008년 기업금융본부장 등을 거쳤다. 2016년 개인고객그룹장으로 옮기기까지 27년간 IB 분야에서 활약하며 국내 최고의 IB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한국투자증권의 한 IB 임원은 “10여 년 전 그가 만든 ‘인수불패’(한국투자증권이 거래를 주관하면 항상 성공한다)라는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IB가 업계 최고 수준에 오른 데에는 정 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설명이다.

정 사장은 특히 IPO 분야에서 발군의 성과를 냈다. 2004년 한국과 미국에 동시 상장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2007년 삼성카드, 2010년 사상 최대 IPO 기록을 세운 삼성생명 상장이 그의 손을 거쳤다. 2005년 상장한 SNU프리시젼(현 에스엔유)은 코스닥 IPO 최초로 해외 투자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정 사장이 기업금융본부를 이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 줄이 막혔다. 국내 증권사 IB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많은 증권사가 IB 조직을 줄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는 오히려 채권담당 부서를 강화했다. 시장이 살아나면 기업의 채권 발행 수요가 폭증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채권시장 점유율이 1%를 밑돌던 한국투자증권은 이후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정 사장은 2016년 IB조직을 떠나 개인고객그룹장이 됐다. 전국 지점을 돌며 직원들과 소통했다. 개인 자산관리(AM) 부문 수탁액을 2조2000억원 늘리는 성과를 냈다. 한국투자증권의 AM 수탁액 순위는 그가 부임하기 전 3위였지만, 지난해 2위로 올라섰다.

수탁액을 늘린 비결은 IB와 AM의 결합이었다. 정 사장은 공모 부동산펀드 등 대체투자 상품을 앞세워 공격적인 성향의 개인투자자 자금을 모았다. IB 전문가로서 강점을 살려 대체투자 상품 판매에서 업계를 선도했다. 2017년 11월 시작한 발행어음으로 안정 성향의 고객 자금도 유치했다. 평일 5일 중 4일은 지점 직원들과 만나면서 영업을 진두지휘했다.

“영업은 디테일…고객을 세심히 대해야”

정 사장은 사장 취임 후 “올해 세전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고, 3년 안에 순이익 1조원 클럽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영업이익 1조원은 국내 어느 증권사도 밟아보지 못한 고지다.

주위에서 ‘호방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고객을 대할 때는 무척 세심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개인고객그룹장 시절 즐겨 썼던 건배사는 ‘리테일 이즈 디테일’이었다. 고객을 대하는 임직원은 사소한 사항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IB맨 시절에도 ‘고객사가 어려울수록 더 친밀하게 다가가 세심한 부분을 챙겨야 한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몸을 사리거나 체면을 중시하지 말고 영업 일선으로 나가라”고 주문한다.

2008년부터 기업금융본부장과 퇴직연금본부장을 겸임하면서 그가 자주 인용한 ‘적소성대 대성소적(積小成大 大成小積)’에도 고객 중심의 철학이 배어 있다. 고객에게 작은 정성을 쌓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정 사장은 ‘사내 고객’인 임직원들의 소소한 민원을 해결하는 데도 힘쓴다. 사소해 보이는 휴식공간, 구내식당, 화장실 등과 관련된 요구에도 귀를 기울인다는 전언이다.

■정일문 사장 프로필△1964년 광주 출생
△1982년 광주진흥고 졸업
△1988년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한신증권 입사
△2004년 동원증권 IB본부 ECM부 상무
△2005년 한국투자증권 IB 본부장
△2008년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및 퇴직연금본부장
△2016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
△2019년 한국투자증권 사장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