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그들만의 리그' 된 선거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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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논설위원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합의한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안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단순 요약하자면 현재의 ‘지역구 당선자 수+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배분’을 ‘50%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역구를 225석(현행 253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를 75석(현행 47석)으로 늘리는 방식에서 ‘난수표’ 같은 산식(算式)이 등장했다.
가령 A당이 정당투표에서 40%를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100% 연동형 제도에선 A당은 300석 가운데 120석(지역구+비례대표)을 가져가게 된다. A당이 지역구에서 80석을 얻었다면 비례대표는 75석 중 40석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50% 연동형에서 A당은 40석이 아니라 20석만 일단 배정받는다. 같은 방식으로 B당, C당에 50% 연동형으로 배분하면 비례대표 75석 중 잔여 의석이 발생한다. 잔여 의석은 지금처럼 정당득표율대로 각 당에 나눈다. A당의 총의석은 ‘지역구 80석+50% 연동형비례 20석+α’가 된다.의원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편안
이게 끝이 아니다. 비례대표 당선자는 6개 권역별로 나눠 배출해야 한다.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해주는 석패율제까지 도입하자는 게 4당의 주장이다. 이 정도 되면 “비례대표 산정 방식은 천재만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빈말이 아닐 듯싶다. 각 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다 보니 어정쩡한 연동형제가 됐다. 만약 이대로 시행된다면 한국에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선거제가 존재하게 되고, 세계 정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국회의원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선거제 논의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됐다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과거엔 선거구 몇 곳을 조정하는 것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한 공론화 과정을 밟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에 여야 4당은 선거제 틀 자체를 바꾸는 중대한 문제를 이런 과정 없이 주고받기식으로 끝냈다.모든 선거제도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 정치 현실에 비춰 타당한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연동형도 마찬가지다. 득표와 의석 비율의 비례성을 높이면 사표(死票)를 줄일 수 있지만, 대통령제에 적합한지에 관한 논란이 많다. 연동형은 소수당에 유리한 제도로, 다당제를 낳기 쉽다.
유권자들 뜻 제대로 반영해
정당 간 연립내각이 보편화돼 있는 내각제에선 연동형을 하더라도 정국 운영에 큰 문제가 없다. 반면 대통령제에선 연정이 쉽지 않아 정국 불안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는 이유다. 독일이 연동형제를 도입한 것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나치당)’과 같은 강력한 정당의 출현을 막기 위한 국가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비례대표제는 후보 선정과 순위 결정 과정에서 밀실 야합·뒷거래 등 상당한 후유증을 낳았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공천 투명성 확보 방안부터 내놓는 게 순서인데 여야 4당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선거제 개편안과 관련해 “제도는 우리가 알아서 마련할 테니 국민은 따라오면 된다”는 식은 오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선거제 개편은 헌법 개정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한 번 도입되면 다시 바꾸기 어려운 만큼 먼저 유권자들의 의사를 묻고 동의를 받는 게 제대로 된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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