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이 깨질 정도로 물 퍼부었는데…지열발전 '적정 수압 기준'도 없었다

"포항 지진, 높은 수압이 주원인"
철저히 방관…커지는 정부책임
2017년 11월 포항 지진의 원인을 제공한 지열발전 사업단이 위험을 키우는 동안 정부가 철저히 방관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6일 “지열발전 사업단이 땅 밑으로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적정 수압 관리 기준’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것이 건설 공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높은 수압을 계속 유지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지열발전은 땅 밑 깊숙이 높은 압력의 물을 주입해 증기와 열을 발생시킨 뒤 전기를 만든다. 포항 지열발전 사업단은 최대 89MPa(메가파스칼)의 수압을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통의 지열발전에서 이뤄지는 ‘수리 자극’을 넘어 암반을 파쇄할 정도의 강한 위력이다. 해외 지열발전소보다 3~4배 높은 압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열발전은 수압이 높을수록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땅 밑 암반에 대한 자극이 높아지고 지진 위험도 커지기 마련이다. 정부가 적정 수압 기준을 조기에 마련하고 관리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정부는 물 주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2016~2017년 사업단이 얼마나 높은 수압으로 작업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강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장은 “사업자 입장에선 경제성을 위해 수압을 높이고 싶은 게 당연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절히 제어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수차례 지진이 발생한 과정에서도 정부가 한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나기 7개월 전인 2017년 4월 규모 3.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업단이 정부에 보고했지만 산업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수십 차례의 미소 지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단은 규모 3.1 지진 4개월 뒤 물 주입을 재개했고 이후 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졌다.

신재생에너지 정책 과속이 재난을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열발전 사업을 시작한 2010년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R&D) 예산이 전년 대비 16.8% 급증했다. 당시 산업부 내에서도 “부실화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