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 R&D, 과제 선정부터 민간에 맡겨야

산업통상자원부가 7년간 총 6000억원을 투입하는 ‘알키미스트(alchemist·연금술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연금술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파괴적인 잠재력을 지닌 도전적 과제를 집중 지원하는 방식의 연구개발(R&D) 사업으로, 미국 국방고등연구기획국(DARPA)의 운영방식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중요한 것은 선진국형 R&D의 밑바탕에 깔린 철학과 인식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늬만 모방해선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 R&D 과제의 높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혁신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코리안 R&D 패러독스’의 가장 큰 이유로 실패에 대한 부담이 꼽혀왔다. 실패 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풍토에서는 연구자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쉬운 과제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자들이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패 책임을 지우지 않겠다고 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부처에서 실패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서 감사원이 그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란 게 연구 현장의 하소연이다. 정부는 이런 불신과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나아가 정부가 선진국형 R&D로 가겠다고 한다면 과제 선정부터 민간에 맡기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60명으로 구성된 ‘그랜드 챌린지 발굴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민간의 역할이 과제 발굴에 그친다면 지금 하고 있는 R&D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관료들이 기업인 등 전문가들을 내세워놓고 뒤에서 조정하는 식의 정부 R&D에 마침표를 찍을 때도 됐다.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잠재력이 큰 미래기술 개발은 정부 R&D가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때 가능하다. 관료들이 쥐고 있는 R&D 권력을 과감하게 민간으로 넘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