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590여곳 같은 날 주총…올해 최대 '슈퍼 주총데이'

한진칼 공방 끝 한진그룹 '완승'…박삼구·조남호 대표 자리 물러나
한진칼, 아시아나항공 등 상장사 590여곳의 정기 주주총회가 29일 하루에 몰렸다.올해 최대의 '슈퍼 주총데이'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597개 상장사(유가증권시장 173개사, 코스닥 364개사, 코넥스 60개사)가 주총을 개최했다.

한진그룹과 한진칼의 2대 주주인 KCGI가 맞붙은 한진칼 주총이 단연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중구 한진빌딩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진칼 주총에서는 KCGI 측에서 신민석 부대표 등이 참석해 안건마다 경영진과 공방을 벌였다.

첫 번째 안건인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 건에 대해 신민석 부대표는 "별도 대차대조표를 보면 지난해 연말에 1천600억원 단기차입금이 있고 예금이 1천억원 정도 늘었다"며 "4%로 대출받으면서 굳이 1천억원을 1%대 예금에 넣어야 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특히 "그러다 보니 자산총액이 2조원을 넘었는데 이렇게 되면 배임 등의 이슈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확실한 답변을 부탁한다"고 밝혔다.한진칼이 감사 선임 대신에 현 경영진에 유리한 감사위원회로 대체하기 위해 자산총액을 억지로 2조원 이상으로 늘리면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 아니냐는 공격이었다.

이에 한진칼 재무담당 이성환 전무는 "차입목적은 단기차입금에 대한 선제적 조달이며 금융 경색에 대비해 운영자금을 추가 확보한 것"이라며 "정상적인 경영이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린다"고 반박했다.

KCGI측 반대에도 표결 결과 이 안건은 참석 주주의 77.8%가 찬성해 가결됐다.
또 KCGI측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최측근인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연임 건에 대해서도 "2016년 한진칼 사내이사로 있으면서 한진해운을 지원하기 위해 상표권을 700억원에 인수해 한진칼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했다"며 반대했으나 3대 주주(7.34%)인 국민연금마저 찬성표를 던지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KCGI는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3명 선임 건 등에도 반대 의사를 표시했으나 사측 안건이 원안대로 모두 통과했다.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정관 변경안은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무산됐다.

이 안건은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의 한진칼 및 자회사 이사직을 박탈하는 내용으로, 27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조양호 회장을 겨냥한 것이었다.

결국 한진칼 주총은 조 회장 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다만 내년 3월 조 회장과 아들 조원태 사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1년 뒤 치열한 표 대결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

금호산업 주총에서는 당초 의결 안건으로 상정했던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의안이 본인의 사퇴로 인해 철회했다.

이는 전날 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한정' 사태와 관련해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주총에서 감사보고서 문제와 관련해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시아나항공 김수천 대표이사는 주총 인사말에서 "주주 여러분에게 큰 심려를 끼친 점 깊이 사과한다"며 "건실하고 투명한 경영으로 주주와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신뢰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주들은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실적이 좋지 못하고 박 회장의 퇴진으로 회사 안팎 상황이 어수선한 점을 우려했지만 크게 문제를 제기하진 않아 주총은 예상외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아시아나항공 사외이사 후보에 올랐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법무법인 인강 대표변호사는 주총 직전에 후보직을 사퇴했다.
한진중공업 주총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이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계기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진중공업은 지난달 자회사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부실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주식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조 회장의 퇴진으로 새 대표이사에는 이병모 사장이 선임됐다.한편 이날도 시너지이노베이션, 판타지오 등 여러 상장사 주총에서 정족수 미달로 감사 선임이 불발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