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 나빠진 이유, 잘못된 정책 탓" 국민 목소리 듣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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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5
투자는 '의지' 아닌 '기회와 예측'의 산물국민의 80%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수정 또는 중단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한경의 설문조사 결과(4월 2일자 A1, 4, 6면)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나 비판은 다양하게 이어졌지만, 일반인들의 인식도 이만큼 부정적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전국 7대 도시의 1188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51%)이 ‘시장에 부담 주는 정책’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답했다.
경제주체를 '아이' 아닌 '어른'으로 대접해야
과감한 규제혁파와 고용 유연안정성 시급
한경 설문조사는 한마디로 우리 경제를 억누르는 ‘정책 리스크’를 비(非)전문가들도 폭넓게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고지에 힘겹게 올라섰으나 ‘형편이 나아졌다’는 응답이 15%에 그친 대목도 주목된다. 곳곳에서 기득권의 공고화, 격차 심화, 미래성장동력 약화 등 여러 가지로 비정상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우리 경제의 민낯이 이 응답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올 들어 우리 경제는 급격히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투자·소비·고용 모두 지지부진한 가운데 버팀목인 수출에까지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는 ‘초(超)슈퍼예산’도 모자라 매년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돈을 풀지만 성장률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그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2.6% 성장도 힘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도 강조했듯이 구조 개혁, 규제 혁파, 고용시장의 유연안정성 확보(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높이기)는 더 미룰 수 없는 ‘3대 과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급등한 최저임금 문제나 부작용이 뻔히 보이는데도 대책 없이 시행에 들어간 주 52시간 근로제처럼 ‘더 기울어지는 운동장’이 고용·노동 이슈만의 현상이 아니다. 기업 경영을 옥죄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가 다 그렇다. 공공의 비대화와 무분별한 복지 확대로 인한 재정건전성 약화까지 이 와중에 걱정거리로 덧보태지는 상황이다.
한경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흐름의 경제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자 궤도 수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경고라고 봐야 한다. 매일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이제 배울 만큼 배웠고 현명하다. 시장의 작동원리, 일자리 창출의 회로, 국제 경제와 자산시장의 민감한 흐름, 경제와 정치·사회의 연관성 등에 대해 두루 잘 안다. 정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주도했던 개발연대가 아닌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업을 너무 어린애 취급한다. 경제주체들을 ‘어른’으로 대접해달라”고 한 하소연을 정부와 국회 모두 새겨들어야 한다. 박 회장은 “투자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기회와 예측의 산물”이라는 언급도 했다. 투자가 위축되고, 그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든 현실에 대한 에두른 비판이다. 경제를 이념과 구별하라는 경고에 다름 아닐 것이다.
개방형 강소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좇아야 살아남는다. 수출과 투자 유치, 일자리까지 여기에 달렸다. 정부는 그 길로 나아가고 있는가. 이번 설문조사는 상황 진단과 함께 최저임금 동결(58%) 등 단기과제도 확인했지만, 정책입안자들은 그 뒤쪽의 근본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