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새 아파트 전셋값 5000만원…영종도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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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몰려 전세가격 '뚝뚝'수년 전 미분양으로 홍역을 치른 인천 영종하늘도시가 또 심상치 않다. 전셋값이 폭삭 주저앉았다. 일부는 서울 강북의 옥탑방이나 반지하방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렸다. 새 아파트 입주가 몰린 영향이다. 수요가 제한적인 곳에 공급이 단기 집중된 게 원인이다. 신혼부부들에겐 헐값에 둥지를 마련할 기회다.
"수요 적은데…" 9월 또 입주
◆전용 84㎡ 전셋값 5000만원4일 인천 중구 중산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영종도 일대에서 ‘전세 바겐세일’이 진행되고 있다. 정상 가격보다 7000만~8000만원을 낮춘 급전세도 나온다. 입주하는 새 아파트가 늘자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먼저 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올해 입주 7년째를 맞은 ‘영종동보노빌리티’ 전용면적 84㎡는 최근 5000만원에 전세거래됐다. 서울의 웬만한 소형 원룸 전세가격보다 낮다. 같은 주택형의 정상 전세가격은 1억2000만~1억3000만원 선이지만 집주인이 대출을 끼고 있는 탓에 싼값에 매물로 내놨다. 중산동 A공인 관계자는 “물건이 나온 당일 바로 계약이 이뤄졌다”며 “융자 규모가 큰 데다 세입자가 귀하다 보니 저렴한 값에 내놓았던 집”이라고 전했다.
주변엔 전셋값이 1억원을 밑도는 아파트가 흔하다. 지난 1월 입주한 ‘e편한세상영종국제도시오션하임’ 전용 84㎡는 9000만원에 여전히 세입자를 구하고 있다. 역시 집주인이 대출을 낀 조건이라 싸게 나왔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이 경우 전세입자가 등기부 상 은행보다 후순위가 된다. 만약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면 세입자는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있어 전세보증보험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대출이 없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종센트럴푸르지오자이’ 전용 84㎡는 무융자 전셋집이 8000만~9000만원 선에 다수 나왔다. 수분양자들이 내야하는 잔금에 딱 맞춘 가격대다. 이달 중순으로 입주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잔금이 급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확 내린 것이다.
신축 단지를 중심으로 급전세가 늘면서 주변 아파트도 유탄을 맞고 있다. 2013년 입주한 ‘영종신명스카이뷰주얼리’ 전용 56㎡는 대출 없는 전세 호가가 7000만원 안팎이다. 연초 1억원대에 비해 크게 떨어진 가격이다.
◆6년 전 ‘악몽’ 재연되나6년 만에 다시 터진 공급 폭탄이 영종도 전세시장을 뒤흔들었다. 지난해 8월 ‘영종스카이시티자이(1034가구)’를 시작으로 1년여 동안 5개 단지 5297가구가 쉬지 않고 입주했다. 오는 9월엔 2개 단지 1409가구가 또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영종도 인구가 7만5000명 안팎에 불과한데 3인 가구 기준으로 2만명이 살 수 있는 집이 1년 새 추가로 지어진 셈이다.영종도는 송도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보다 서쪽에 있는 외딴 섬이다. 인천국제공항과 반도체기업 스테츠칩팩코리아 상주 인원이 사실상 주택 수요의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수년 전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2012년 하반기~2013년 초까지 8800여 가구가 한꺼번에 입주했는데 악성 미분양이 줄지 않자 건설사들이 할인분양을 시작하면서 입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생활 여건이 불편한 것도 수요를 더욱 제한하는 요인이다. 종합병원이 없어 주민들은 응급실에 가려면 육지까지 나가야 한다. 대중교통 여건도 좋지 않다는 평가다. 주택가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공항철도마저 수도권 통합 요금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역에서 청라국제도시역까지 이동할 경우 통합요금제 적용으로 1850원이 든다. 그러나 청라국제도시에서 영종역까지 한 정거장만 더 이동해도 요금은 2750원으로 오른다. 해당 구간은 독립요금제가 적용되는 까닭이다. 중산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영종도에서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주변 개발 호재는 많다. 영종도 북단에 미단시티 복합리조트가 2021년 개장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약 100만㎡의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인근서 다음 달 착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휴양시설이어서 주택 수요 증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영종도 부동산업계는 2025년 개통 예정인 제3연륙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천대교와 영종대교가 인천공항에 초점을 맞춰 선형이 짜인 반면 제3연륙교는 청라국제도시와 영종도 주택가를 바로 이어주기 때문이다. 부평·부천 등 주변 출퇴근도 쉬워진다. 중산동 B공인 관계자는 “내년 착공 예정인 사업이지만 조기 착공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민원을 많이 넣고 있다”며 “지금 꺾인 매매·전세가격은 다리 개통 시점까지 쉽사리 반등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