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EU] 프랑스는 왜 뒤늦게 중국산 와인 수입에 나섰나

깊어지는 경기 침체에 '차이나 머니' 밀착하는 유럽 국가들
프랑스가 처음으로 중국산 와인을 수입한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프랑스 와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인 중국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자국 와인 시장에 대한 접근을 허용한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유럽의 경제 상황에 힘입어 중국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됩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일 “중국산 와인이 프랑스에서 공식 데뷔를 마쳤다”고 보도했습니다. 약 2100병 정도의 중국산 와인이 이날 처음으로 프랑스의 상점들과 식당들에 공급되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번에 프랑스로 수출된 와인들은 중국 3대 포도주 산지인 허베이성 산시성 닝샤성 인근에서 생산됐습니다. 상표로는 총 10종의 중국산 와인이 이날 프랑스 시장에 처음 소개됐습니다.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중국산 와인 유통업자 지아징루씨는 중국산 와인을 프랑스에 들여오기 위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관 당국과 씨름해야 했다고 합니다. 수입 허가를 받은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정식 판매가 이뤄지기까지 반 년 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지아징루씨는 “어렵게 들여온 만큼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중국산 와인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이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랑스가 중국산 와인을 수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세계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적잖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국 전통주인 와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하늘을 찌를 만큼 높은 자존심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프랑스에는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와인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몇 해 전 중국인들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보르도에서 포도밭을 대규모로 사들이기 시작하자 이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빗발치기도 했습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하면서 프랑스에서도 이른바 ‘차이나 머니’를 끌어올 필요성이 커졌다는 관측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1%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유로존 재정 위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2013년 이후 최저치입니다. 유럽 경제의 맹주인 독일마저 올해 성장률이 0.7%에 머물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중 무역갈등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무역이 대폭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양호한 프랑스의 경제성장률도 지난해(1.6%)보다 떨어진 1.3%로 전망됩니다.지난달 21~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럽을 순방하던 당시 유럽 국가 지도자들은 그를 극진히 환영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해외 국가 정상을 한자리에서 동시에 맞이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지구상에 단 두 권뿐인 300여 년 전 프랑스어판 ‘논어도독(論語導讀)’ 원본 한 권을 선물해 주목받았습니다. 시 주석은 프랑스산 항공기 300대를 350억달러(약 40조원)에 구매할 것을 약속하며 화답했습니다.

심지어 이탈리아처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유럽 국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 주석이 2013년 처음으로 제시한 일대일로 구상은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무역 및 교통망을 연결하는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주로 중국 국유은행이 인프라 펀드를 통해 저개발국에 차관을 제공한 뒤 중국 기업이 건설과 운영을 맡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완공 뒤 얻는 운영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사업 채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시아 저개발국들이 무리한 투자 계획을 수용하면서 재정난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일대일로 사업 참여 일환으로 자국 항구 네 곳을 중국 자본에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미국 등이 만류했지만 이탈리아는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가져다줄 과실이 더 높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0.2%를 기록해 지난해 3분기에 이어 두 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해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한편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유럽 국가가 두 곳 더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