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국회 청문회의 '부동산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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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 한경부동산연구소장 겸 건설부동산전문기자
청문 관행·방식 개선 시급청문회에서 부동산 관련 질의는 ‘부동산 보유=투기=부도덕’이란 부정적 도식을 전제로 ‘투기 의혹 프레임’을 짜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듣기 민망한 ‘내로남불 질책’도 다반사다. 네 채의 집을 소유한 한 야당 국회의원은 세 채 가진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게 ‘투기를 인정하라’고 몰아붙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30명 중 2채 이상 다주택자는 13명으로 전체의 절반 수준이다. 전체 국회의원 중에서는 40% 가까이가 다주택자다. 일반 국민은 국회의원 다주택자 비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만이 다주택가구(2017년 기준)다. 다주택으로 시세차익까지 생겼으니 확실한 투기 행위라는 ‘황당 질책’도 이어진다. 부정적 뉘앙스가 물씬 풍기는 ‘투기’라는 단어를 무기로 공격한다. 이런 식이면 시세차익을 못 챙긴 다주택자는 투기에서 면책인 것인지, ‘국민 눈높이’에는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으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이런 일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세 번째 개각에서는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투기 프레임에 걸려 떨어졌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지목된 김용준 후보자도 ‘투기 의혹’에 밀려 사퇴했다. 이외에도 적잖은 장관 후보자가 ‘투기 공격’으로 내상을 입었다. 부동산 보유 과정에 위법이 없어도 ‘국민 눈높이’라는 ‘초법적 부동산 장애물’에 걸려 탈락하기도 한다.장관들에 대한 국회의 부동산 청문, 이젠 달라져야 한다. 부동산 과다 보유자는 무턱대고 ‘투기 의심자’로 분류해서 여론재판에 올리고, 정책 수행에도 문제가 있을 것처럼 몰아가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장관 후보자들의 부동산은 매입·계약 단계 불법 여부, 탈세 여부 등 법적·도덕적 흠결을 꼼꼼히 합리적으로 검증하면 된다.
부동산 청문 과정을 정치적 반대파의 공격 도구로 활용하는 행태가 지속되면 피해는 모두 부동산산업과 시장의 몫으로 돌아온다. 부지불식간에 부동산은 투기대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고착되는 폐해가 생긴다. 주식을 사면 ‘투자’, 부동산을 사면 ‘투기’라는 식의 인식이 굳어질 수 있다. 현재도 이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산업 선진화 저해지금의 청문회는 부동산에 대한 대국민 인식을 더욱 부정적으로 심화시켜 관련 시장과 산업계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부동산=투기’라는 도식은 해외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디벨로퍼(부동산 개발사업자)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의 사업 방식과 투자 행위를 두고 ‘투기’라는 단어로 비난당한 적이 없다. 이제 우리도 부동산시장과 산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모두의 노력으로 걷어내야 한다. 선진국들처럼 건강하고 즐거운 느낌이 풍기도록 해야 한다. 국회 청문회의 부동산 검증 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