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 논의에 참여해온 공익위원이 4일 ILO가 한국을 '노동 탄압국'으로 보고 있다며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하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인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노동 3대 학회 공동 정책토론회' 발제에서 "올해 ILO가 발간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 보고서 정리 문건에서 우리나라 노동관계법 제도가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쟁점이 무려 259차례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며 "최소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우리나라에 대해 가진 인상은 노동 탄압국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ILO 산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ILO 회원국이 노동자 단결권 보장을 포함한 결사의 자유 원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는 기구로, 한국에 결사의 자유를 이행하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노사관계 개선위원회는 작년 11월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방향을 담은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한 데 이어 경영계 요구에 따라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위원회는 지난달 말이었던 논의 시한을 이달 초로 미루고 막판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기본협약(ILO 핵심협약)이 대변하고 있는 가치는 단순한 노동 기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권을 반영하고 있다"며 "8개 기본협약의 비준은 인권 선진국으로서 위상을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협약,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와 제105호 협약 등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국제 노동단체인 국제노총(ITUC)이 세계 각국의 노동권 위반을 6단계로 분류하면서 한국을 알제리, 바레인,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캄보디아, 중국 등과 함께 사실상 최악인 5단계에 포함한 점도 거론했다.
그는 "현 정부 출범을 계기로 ILO 기본협약 비준은 국정과제로 설정돼 있고 대통령이 ILO 사무총장에게 직접 비준을 공언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미비준 기본협약의 비준은 할 것인지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 문제만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춰 노동관계법 개정을 먼저 하고 협약을 비준하기보다 협약 비준부터 하자는 '선(先) 비준 후(後) 입법' 주장에 대해서는 "사전에 국내법의 국제노동기준 위반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해 위반 내용에 대해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ILO) 총회 기준 적용 위원회에 회부되는 것을 넘어 조사위원회 설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그는 "선 비준 후 입법이든, 선 입법 후 비준이든, 국회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기본협약 비준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국회가 담당해야 한다"며 "바꿔 말하면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못할 경우 궁극적인 책임도 국회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