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시뻘건 불길이"…화마에 휩싸인 속초 '공포감'

"연기와 재로 눈뜨기조차 힘들어"…뜬눈으로 밤샌 주민들 발만 동동

"밤하늘도 온통 불타고 있는 듯합니다.연기와 재로 숨쉬기조차 힘듭니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을 피해 임시거처로 옮긴 허모(48)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허씨는 속초 교동에 있는 7층 사무실 창문을 통해 5km가량 떨어진 화마(火魔)를 넋 놓고 바라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북쪽으로 향하던 시뻘건 불길이 이내 방향을 바꾸더니 속초 도심 아파트가 밀집한 교동지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문자를 통해 인근 고성산불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직선거리로 2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뿜어내는 불길이 불과 5분여 만에 눈앞 300여m 앞으로 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허씨는 노트북과 중요 서류만 챙겨 급하게 건물을 빠져나왔지만, '긴급 대피' 문자메시지를 보고 대피한 주민들과 함께 공포감에 휩싸였다.

한꺼번에 나온 주민과 차량이 도로변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탓에 거리는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먼발치로 보이던 '펑펑' 굉음을 내던 불기둥이 이내 인근 산으로 옮겨붙었고, 시뿌연 연기와 잿더미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눈앞을 가로막을 수 있어 '여기서 탈출'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고속도로마저 통제됐다는 동료 직원의 얘기에 일단 급한 대로 대포동의 거처로 옮겼다.

교동의 아파트 10층에 있던 김모(52·교동)씨도 피난민 신세가 됐다.
속초 도심까지 불길이 다가왔다는 소식에 영랑동에 계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오기 위해 급하게 향했다.

먼발치에서 주유소가 터지며 불기둥을 뿜어내던 전쟁터 같았던 현장을 지켜본 탓에 공포심은 극에 달했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김씨는 "영랑초교 주변은 가시거리가 50m밖에 안 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며 "강풍이 잠시 잦아들기도 했지만, 연기와 재가 날려 눈을 도저히 뜰 수 없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임시대피소였던 중앙초교에 대피가 불가하다는 문자를 받은 김씨는 어머니를 성당으로 옮기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나마 상황이 괜찮다는 조양동 쪽으로 향해 숙소를 찾아 잠을 청했지만, 근심과 걱정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라며 "하루빨리 불이 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풍은 잠시 잦아든 듯하지만, 임시거처에 모여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학교 강당 등으로 임시거처로 옮긴 주민은 '혹시라도 집에 불이 옮겨붙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휴대전화 뉴스를 지켜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산불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계속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자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