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르포] "아파트 바로 앞까지 거센 불길이…무조건 막아야죠"

교동 아파트단지 일대 밤새 화마와 사투…불면의 밤 지샌 주민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불길은 금세 아파트 앞까지 다다랐다.화염과 건물의 거리는 채 30m도 되지 않았다.

소방대원은 물론 아파트 관리인들까지 건물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와 불길을 향해 쏘아댔다.

불은 거센 기세를 쉽게 잃지 않았다.다행히도 속초 교동의 아파트로 향하던 바람이 제 몸을 살짝 틀어 불길도 함께 방향을 바꿨다.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물을 뿌렸다.

그렇게 자정을 넘기고 5일 새벽이 돼서야 아파트단지를 향하던 불길은 사그라들었다.대피 안내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부랴부랴 짐을 꾸렸다.

차량으로 향하면서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뒤를 돌아봤다.

주차장은 이내 텅 비었다.하지만 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차량 불빛은 꼬리를 물고 교동초등학교로 향했다.
딸과 함께 대피소로 향하던 최모(44)씨는 "저녁에 뉴스를 보면서 '설마 속초까지 불길이 올까' 했는데 방금 대피문자 받고 가족과 함께 대피소로 간다"며 "부디 아무도 다치는 사람 없이 불이 꺼져 내일 아침에는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불과 1㎞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또 다른 사투가 벌어졌다.

도시가스 공급업체와 액화석유(LP)가스 충전소 인근까지 산불이 내려온 것이다.

불길을 잡지 못하면 자칫 대형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소방대원들은 필사적으로 진화 작업을 펼쳤다.

다행스럽게도 불길은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속초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날이 밝자 처참한 화재의 흔적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만개한 벚나무와 병풍처럼 둘러 아파트를 지키던 잣나무들은 검게 그을렸다.

울타리 너머 뒷동산은 잿더미로 변했다.
대피소를 빠져나온 주민들은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

어린이들은 추위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발걸음을 옮겼다.

주인 따라 대피했던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몇몇 주민들은 쉬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검게 타버린 숲을 바라봤다.

곳곳에서 나는 헬기 소리가 하늘을 채웠다.

헬기는 낮고 분주히 움직였다.

진화율은 이제 절반을 넘겼다.전날부터 고성과 속초를 집어삼킨 불길은 여의도 공원과 맞먹는 250㏊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