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종 인사혁신처장 "공무원 적극행정에 파격 인센티브…감사원 정책감사 '뒤탈' 걱정 마라"

한경 인터뷰

취임 100일 첫 언론 인터뷰
황서종 인사혁신처장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말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에게 적극행정이란 너무나 당연한 명제”라며 “확실한 포상과 징계로 공직사회를 바꿔놓겠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규제 개혁에 적극 나선 공무원에 대해 다른 동료들이 시기할 정도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려고 합니다.”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지난달 말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 행정을 다루는 모든 공무원들이 적극행정에 나서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적극행정’은 지난해 12월 17일 취임한 황 처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황 처장은 “적극행정, 즉 공무원들이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확실한 포상과 징계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아온 공직사회의 낡은 관행과 문화를 바꿔놓겠다”고 했다. 황 처장은 취임 이후 100여 일 동안 ‘두문불출’이라 할 정도로 언론 노출을 피해왔다. 수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업무 파악이 우선”이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지난달 말 “이제 생각이 좀 정리됐다”며 한국경제신문과 처음 인터뷰를 하고 100여 일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포부를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밝혔다.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취임 후 입술이 두 번 터졌습니다. 상처가 아물지를 않네요.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고 주로 인사행정을 맡아왔지만 ‘어떻게 하면 일 잘하는 공직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2014년 인사처가 독립부처로 출범하게 된 이유가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시각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할 때입니다.”

▷취임 일성으로 공무원 ‘적극행정’을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말 그대로 공무원은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공무원들이 규정을 이유로 소극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많이 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적극행정이란 게 어렵고 복잡한 게 아닙니다. 가령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천공항에 국제운전면허증 발급 창구가 없었습니다. 국제운전면허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국민이 급하게 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인근 파출소로 가야 했지요. 일선 경찰의 제안으로 지난해 공항 내 발급창구를 마련했고 출국하는 국민들이 면허증 발급은 물론 해외 체류기간에 예정된 적성검사 연기 신청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상을 받은 적극행정 우수사례 중 하나입니다.”▷‘복지부동’하는 이유로 감사원 정책감사 탓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최근 공직사회 적극행정 추진방안을 인사처 단독이 아니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인사처 혼자 적극행정을 장려하거나 문책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감사원도 대책회의에서 뜻을 같이했고, 앞으로는 행정을 적극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정책감사에서 ‘뒤탈’이 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인사처 차원에서도 공무원들이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센티브를 준비하고 있는지요.“현재 권고사항인 적극행정 공무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반드시 주도록 의무화하고, 해당 공무원이 원하는 형태의 인센티브를 최대한 빨리 줄 계획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당 부처 장관, 기관장들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만나 협조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공직자 재취업 심사가 ‘이현령비현령’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이 불만을 품는다는 얘기라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지적입니다. 공직자들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들의 만족 또는 불만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눈높이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다만 재취업 심사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 위원 명단 공개나 위원 수 확대 등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최근 청와대 출신 인사의 ‘특혜성 취업’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재취업 심사는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비슷한 사례로 보이더라도 개별 심사 건별로 상황과 사정이 모두 다릅니다. 업무 연관성은 물론이고 취업하려는 기관·기업의 어떤 직위로 가려는지에 따라서도 판단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심사위원회는 민간위원 7명, 정부위원 4명이 한자리에 앉아서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특정 부처를 배려하거나 배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업무연관성이 있어도 ‘공익’을 위한 경우라면 재취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심사기준 자체가 너무 모호한 것 아닌가요.

“심사기준 자체가 적정한지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번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공직자 취업 특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재취업 제한을 강화하고 대상을 확대하는 쪽으로만 해왔는데 이제는 심사기준을 비롯해 공직자윤리법 전체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재취업 제한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안전이나 방산부문처럼 파급효과가 큰 분야에 대해서는 소규모 업체 취업도 제한하는 등 재취업 기준을 좀 더 강화하려고 합니다. 다만 하위직 공무원들의 생계형 재취업에 대해서는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9급 공무원 채용 시험이 크게 바뀐다고 합니다.

“시험과목과 현장의 괴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는 고교 선택과목을 폐지하고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과목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물론 수험생 혼란을 고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이르면 2022년부터 시행할 예정입니다. 가령 세무직, 검찰직, 교정직 등은 수학·과학 같은 고교과목 대신 회계학 형사소송법 교정학개론 등 전문과목을 치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채용 후 수개월이 걸리는 재교육 부담도 덜고 결과적으로 대국민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고졸 인재의 공직 진출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초 고교과목을 선택과목화했던 것은 고교 졸업생들의 공직 진출 기회를 넓히고자 했던 거지만 대학 진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되레 고졸자들의 공직 진출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9급 시험 개편과 함께 지역인재 채용은 대폭 늘릴 계획입니다. 9급 공무원 채용 시험 개선 방침은 고교과목 축소와 지역인재 채용 확대, 이 두 개의 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 낭인’이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작년에 발표한 7급 공무원 채용 시험 제도 개편 계획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영어와 한국사 시험은 민간의 인증시험으로 대체하고, 국어는 민간기업에서 많이 활용하는 PSAT(공직적격성평가)를 도입하겠다는 게 골자였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민간기업 채용 시험과의 호환성을 높임으로써 공시생들의 선택 기회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년보장과 두둑한 연금, 육아휴직 등의 ‘특혜’가 공시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지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정부가 모범적인 고용주로서 솔선수범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 활성화 등은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 민간에서 따라오지 않습니다. 마중물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정부가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래야 합니다. ‘철밥통’ 논란에 대해서는 공무원 범죄의 약 40%를 차지하는 음주운전과 성비위에 대해 징계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순환보직 관행 과감히 축소…한국도 '웬디 커틀러' 같은 전문직 공무원 키워야"

황서종 인사혁신처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안정지향적인 공직사회 풍토와 후배 공무원들의 ‘전투력 부족’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황 처장은 “한국에서도 웬디 커틀러 같은 공무원을 키워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커틀러는 2006~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인물로, 1988년부터 28년간 통상분야에서만 근무해 전문직 공무원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황 처장은 공무원사회의 오랜 논란거리인 ‘순환보직’ 관행부터 줄여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몇 년마다 자리를 바꾸는 순환보직 시스템으로는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며 “내가 만들고 집행한 정책인데 평가는 후임자가 받게 됨으로써 행정 책임성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처는 지난 1월 기준 통상·재난안전 등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를 중심으로 42개 중앙행정기관의 4437개 전문직위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황 처장은 전문직위제에 반대하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등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9부 능선까지만 올라서는 올라온 길과 방향 말고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며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정상에 오르면 다른 봉우리들도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승진에 유리하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돌다 보면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르기도 힘들뿐더러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도 떨어져 공직서비스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황서종 약력△1961년 전남 강진 출생
△1979년 광주 동신고 졸업
△1985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87년 행정고시 31회
△2008~2010년 외교통상부주태국대사관 총영사
△2010~2014년 안전행정부 인사정책관·전자정부국장
△2015~2016년 인사혁신처 차장
△2016~2018년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2018년 12월~ 인사혁신처장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