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中 '부채 함정 외교'…美·中 협상에 새 불씨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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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DTD란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대출을 해주고 이를 빌미로 모든 문제에 간섭하는 일종의 세 확장 전략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청한 IMF의 경제신탁통치와 동일한 방식이다. 올해 들어서는 이탈리아 등 선진국으로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은 패권국을 지향한 이후 ‘베이징 컨센서스’를 추진해왔다. 초기에는 자원 확보를 매개로 했기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자본을 매개로 세력을 확장해온 ‘워싱턴 컨센서스’와 충돌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신용경색에 시달리던 미국이 디레버리지(달러자산 회수)에 나서자 그 틈을 파고들어 자금을 공급하면서 충돌이 심해졌다.베이징 컨센서스에 따른 중국의 세 확장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개도국의 대출을 늘리는 동시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참가국에 차관 공여를 최대한 늘려주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IMF의 특별인출기금(SDR) 바스켓 준비 통화로 들어가 위안화 위상을 높이는 방안이다. 후자는 2016년에 달성했다.
IMF의 재원 사정도 녹록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쿼터 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자체 신용을 토대로 영구채 발행을 검토할 만큼 재원 사정이 악화됐다. 아르헨티나, 터키, 파키스탄 등 구제금융 신청이 급증한 작년 이후 IMF 파산설이 나돈 것도 이 때문이다.
IMF로서도 중국의 DTD를 막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DTD의 후유증으로 자금난에 봉착한 회원국이 신청한 구제금융을 지원할 경우 IMF가 중국의 세 확장을 도와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IMF가 중국의 시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춘계 회의에서 DTD를 주요 안건으로 다루는 배경이다.트럼프 정부가 IMF에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하다. IMF·WB·ADB(아시아개발은행)와 동일한 선상에서 중국 중심의 CRA(긴급외환기금)·NDB(신개발은행)·AIIB(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 간 ‘3×3 매트릭스 구도’가 잡힌 상황에서 IMF가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2차 대전 이후 지속돼온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IMF·WB 춘계 총회가 끝나자마자 미국 재무부의 ‘2019 상반기 환율보고서’가 발표된다. DTD가 새로운 미·중 간 마찰의 불씨로 대두됨에 따라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글로벌 환율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IMF는 앞으로 있을 미·중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환율조작 방지’만이라도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IMF 구제금융 수혜국이자 중국에 대한 경제 비중이 높은 국가다. 대외경제정책도 중국에 편향적이다. IMF에 따르면 미·중 무역협상 불발로 세계 관세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이 0.65% 감소해 가장 크게 타격받는 국가로 추정됐다. DTD에 따른 IMF, 중국, 미국 간 삼자 관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