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의 혁신…'판매·운용보수 제로'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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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민 KB운용 사장 '승부수'자산운용사가 운용 및 판매보수를 받지 않는 공모펀드가 처음으로 나온다. 운용사는 펀드 운용으로 수익을 내야만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다. 공모펀드 시장 위축이 심해지는 가운데 저(低)수수료 상품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려는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사진)의 승부수다.
'KB 장기 토탈리턴 성과보수'
3년간 수익 8% 못내면 보수 '0'
年 평균 6~7% 수익률 목표
'헤지펀드 대항마' 자리잡을 것
운용·판매보수 ‘0’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자산운용은 8일부터 ‘KB 장기 토탈리턴 성과보수’ 펀드를 판매한다. 오는 19일까지 KB증권과 국민은행을 통해 자금을 모은 뒤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다. 조 사장은 “3년 이상 장기투자를 계획하는 투자자들이 가입하기 적합한 상품”이라며 “3년 동안 연평균 6~7%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운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펀드는 운용보수와 판매보수가 없다. 펀드 가입 시 A클래스 기준 선취판매 수수료로 1.2%, 온라인 전용인 A-E 클래스 기준으로는 0.6%를 뗀다. 운용보수를 일반적 상품의 절반가량으로 낮추고 성과보수를 받는 펀드는 있지만 운용·판매보수를 아예 없앤 펀드는 처음이다. 조 사장은 “수수료를 낮춘 것만으로 일반 주식형펀드에 비해 3년간 4%포인트 이상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운용이 투자자들에게 권장하는 투자 기간은 3년이다. 그 전에 환매하면 환매수수료가 비싸다. 가입 후 1년 안에 환매하면 투자금의 3%, 1~2년에 환매하면 2%, 2~3년에 해지하면 1%를 환매수수료로 내야 한다. 조 사장은 “환매수수료는 운용사 수익이 아니라 펀드 자산으로 편입된다”며 “일찍 환매하는 고객의 수수료가 남는 장기투자자들의 수익률 개선에 도움을 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환매수수료가 사라지는 3년 뒤부터는 펀드수익률이 8%를 넘기면 초과분의 20%를 성과보수로 뗀다. 가입자들이 3년 동안 8%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자산운용사도 돈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헤지펀드 대항마 될까공모펀드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부터 침체기를 겪었다.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중반 펀드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이 금융위기로 큰 손실을 보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공모펀드 트라우마’가 생겼다.
“펀드가 손실을 내도 운용사와 판매사는 수수료로 배를 불린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2008년 말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30조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절반 수준인 67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최소 투자금이 비싸고,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전문 사모펀드)는 2016년 이후 매년 두 배씩 ‘덩치’를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KB운용의 새 상품은 헤지펀드와 닮은 점이 많다는 평가다.성과보수를 앞세운 수수료 구조도 그렇지만, 시장 변동에 최대한 영향을 덜 받도록 운용하려는 전략도 비슷하다. 조 사장은 “엇비슷한 상품만 선보이면 공모펀드 업계가 더 외면받을 것이란 위기감이 컸다”며 “사모펀드와 비교해 수수료가 싸고, 최소 가입금액 제한도 없기 때문에 대항마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악조건 속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주식 비중을 0~100%까지 적극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주식혼합형 펀드여서 주식 편입 비중을 50~100%로 유지해야 하지만, 이 펀드는 지수선물과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활용해 주식 투자 비중을 실제로는 절반 이하로 유지하면서도 적극적인 위험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KB운용의 설명이다.
이는 대부분 공모 주식형 펀드가 코스피200 등 벤치마크(비교 대상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게 목표인 것과 다른 점이다. 이런 펀드들은 시장을 따라가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주식 비중을 항상 9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수가 떨어지거나 박스권 장세에선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로 꼽힌다.조 사장은 “지수가 박스권에 갇히더라도 주식 비중 조절, 저평가 종목 선정, 고배당 기업 투자를 통해 3년 동안 20%가량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운용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KB 장기 토탈리턴 성과보수와 운용 전략이나 수수료 체계가 비슷한 상품을 꾸준히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