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놀랐지? 같이 이겨나가자" 검게 탄 등굣길 '꼭 잡은 손'

동해안 52개 학교 정상 등교…"친구들 집 빨리 고쳐지면 좋겠어요"
강원 동해안을 덮친 산불로 내려졌던 휴교령이 해제되면서 8일 산불피해지역 학생들이 정상 등교했다.시꺼멓게 탄 뒷산과 교정 화단으로 학교에는 매캐한 탄 냄새가 났지만, 주말을 지내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학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날 오전 8시께 전교생 53명의 고성 인흥초등학교에는 노란색 중형 셔틀버스가 분주히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한명씩 버스에서 뛰어내렸다.교실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잠시 놀기도 했다.

한 교사는 산불피해로 아침밥을 챙겨 먹지 못하고 등교한 학생들을 위해 맥반석 계란 두판을 준비해왔다.

박대성 인흥초 교감은 "이번 산불로 학교 창고와 교정 화단이 완전히 불에 타고, 돌봄교실 외벽도 일부 소실됐다"며 "피해 복구를 위해 힘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 교감은 "학교 학생들의 집 9채가 이번 화재로 소실됐고, 12명 학생이 이재민이 됐다"며 "현재 이재민 학생 한 명이 감기몸살을 호소해 결석했고, 나머지는 모두 정상적으로 등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 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를 다른 학교에서 구하고 있고, 담임선생님이나 교직원들이 학생들의 등하교를 돕고 있다"며 "화재 현장을 직접 목격한 학생들이 정신적 충격이 클 것이기에 심리치료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흥초 전교어린이회 회장을 맡은 양하은(12)양은 "원래 예뻤던 학교 정원이 검정으로 변해서 아쉽지만, 교실이 안 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양양은 "부회장네 집도 불이 타고, 6학년 반 친구 셋이 집을 잃었다고 들었다"며 "친구들네 집이 빨리 고쳐지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번 산불로 집을 잃은 6학년 이모(12)양은 "집에 있다가 할머니가 당장 나오라고 소리쳐서 대피했는데 큰불이 있는 걸 봤다"며 "집이 모두 불에 탔고, 지금은 이모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 중"이라고 했다.

집에 있던 교과서나 소중한 물건들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는 이양은 '가져오지 못해 가장 아쉬운 물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3만원짜리 '세븐틴' 앨범 두 개"라며 웃었다.
3학년 장태희(9)양은 "휴대전화로 노래를 들으며 목욕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불이 났다는 재난문자를 받고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린 채 대피했다"며 "우리 집은 안 탔지만, 동네가 다 탔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집을 잃은 아픔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딸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온 이재민 A씨는 학교 운동장에서 자녀에게 "다 지나갈 거야. 걱정하지 마"라며 위로하자, 학생은 동그란 안경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박대성 교감은 A씨에게 "얼마나 놀랐냐. 같이 이겨나가자"며 위로하고, 학생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지난 산불 때 교정 일부가 불에 탄 강릉 옥계중학교도 이날 학생들이 정상 등교했다.

학생들은 오전 8시 30분께부터 불에 탄 소나무 길을 지나 등교를 한 뒤 피해를 본 학교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옥계중학교는 플라스틱 연결 지붕과 에어컨 실외기 2개가 불에 탔다.
교정 곳곳에 화단과 소나무가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이 학교는 산불이 학교로 접근할 때 이정인(56) 주무관이 고무호스를 들고 물을 뿌려 큰 피해를 막았다.

2학년 김승규 학생은 "공부하는 교실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 이렇게 오늘 등교할 수 있었다"며 "불길을 막아준 이 주무관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화마가 휩쓸고 갔지만, 학생들 동심은 사라지지 않았다.등교한 남자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새까맣게 그을린 산을 배경으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연합뉴스